농정에 큰 영향을 끼칠 농업법안과 예산안이 ‘운명의 날’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초대형 이슈 앞에서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다. 윤석열정부 농정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국정 공백 여파가 폭설 피해 현장 등에 미치면서 농업계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12·3 비상계엄’의 후폭풍이 상당하다. 7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된 뒤 정치적 혼란은 더 깊어지는 양상이다. 국정 동력이 약화하면서 정부는 그동안처럼 ‘양곡관리법’ 등 현안을 두고 야당과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기 어렵게 됐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점을 고리로 야당의 송 장관에 대한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송 장관을 불러 비상계엄 사태의 책임을 묻는다는 구상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11월28일 국회를 통과한 4건의 쟁점 농업법안을 수용할지 최종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에서 의결된 법안은 헌법에 따라 정부에 이송된 지 15일 안에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하거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 기한이 20일까지로, 통상 국무회의가 화요일에 열리는 점을 고려하면 17일 이들 법안의 운명이 정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들 법안은 ‘남는 쌀 시장격리 의무화’ ‘농산물 가격안정제’ 등 농정에 큰 변화를 일으킬 제도의 도입 근거를 담고 있다. 농식품부는 여전히 “수용 불가” 입장이나 거부권 행사 후 야당의 법안 재발의 공세가 부담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안을 다시 발의할 것”이라면서 “다만 조기 대선 등의 상황에 따라 공세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농업예산 상황도 복잡하다. 최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야의 예산안 협상이 사실상 ‘올스톱’ 된 가운데, 야당은 정부안(677조4000억원)보다 4조1000억원 감액한 예산안을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9일 성명에서 이같은 감액 예산안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농업분야에서 ▲무기질비료 가격 보조와 수급안정 ▲농식품바우처 ▲공익직불금(전략작물·친환경농업·저탄소농업) ▲사료 구매자금 상환 유예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자금 지원 등의 정책 추진에 난항이 생길 것으로 우려했다. ▶관련기사 2면
농업수입안정보험은 정부안대로 예산이 확정돼도 불안 요인이 남아 있다.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열쇠를 야당이 쥐고 있는 데다 향후 정권 재편이 일어날 경우 제도 입지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농업 법안과 예산안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정 공백은 농촌 현장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당장 11월 중부권 폭설 피해 지역에 대한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재난행정이 사실상 마비된 탓이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중앙안전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선포한다.
정정호 경기도농민단체협의회장은 “폭설이 내린 지 열흘이 지났지만 피해 복구는커녕 손대지도 못하는 농가들도 많은데,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언제 될지 답답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혼란하다면 정치권에서 먼저 민생을 챙겨 특별재난지역이 신속하게 선포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