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푸드(K-food·한국식품) 수출 호조세가 임기 반환점을 지난 윤석열정부의 주요 농정 성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기록적인 수출 성적표에도 농민들은 축배를 들지 못하는 분위기다. 수출 효자 품목으로 거론되는 라면 등 가공식품은 사실상 수입 농산물로 만들어져 국산 농산물 수요 창출과 무관한 데다 농가소득과 직결되는 신선식품 수출 실적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10월말 기준 케이푸드 수출액(잠정)이 지난해보다 8.7% 증가한 81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0월말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이다. 품목별로 보면 즉석밥·냉동김밥 등 쌀 가공식품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수출액이 2억50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41.9%나 증가했다.
라면은 10월 한달에만 1억2000만달러어치가 수출되면서 누적 수출액 10억달러를 돌파했다. 농식품부는 이달초엔 ‘케이 라면’이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달성했다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소식에도 농업계는 입맛만 쓰게 다시고 있다. 케이푸드 수출 확대가 농가 경제에 대한 낙수효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면의 경우 우리밀로 만든 극소수를 제외하면 전부 수입 밀로 생산된다. 최근 ‘케이 라면’의 수출 고공행진은 밀 수입 확대로 이어졌는데, 관세청에 따르면 10월말까지 밀 수입량이 231만5000t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입량인 234만t에 근접했다. 10월까지의 밀 수입 상승세를 11∼12월에도 적용하면 올해 연간 밀 수입량은 역대 최대치인 270만t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송동흠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운영위원장은 “수입 밀 가격의 2.5배에 달하는 우리밀이 라면 원료로서 설 자리를 잃었다”면서 “우리밀 소비가 늘어나려면 밀 직불금 확대를 통해 수입 밀과 가격 차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밝혔다. 농가가 가공업체에 수입 밀 가격 수준으로 우리밀을 판매하고도 소득을 보전하려면 직불금이 1㏊(3000평)당 350만∼400만원은 돼야 한다는 게 밀 생산 현장의 의견이다.
쌀 가공식품 수출 확대 역시 ‘쌀 소비 구원투수’라는 기대감엔 미치지 못한다. 쌀 가공식품 수출액이 2020년 1억3800만달러에서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정부양곡에 대한 원료곡 조달 의존도가 높아 민간 영역에서 소비를 창출하는 데 한계를 보이는 것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쌀 가공식품 원료곡 수요는 2020년 49만2000t에서 2022년 56만9000t으로 늘었는데, 이 중 수입 쌀과 공공비축미 등 정부양곡이 아닌 민간으로부터 조달하는 물량은 20만t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쌀 가공식품업체가 농가와 계약재배를 통해 가공용 쌀을 조달하도록 비용을 지원하는 일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농가소득과 직결되는 신선식품 수출 성장세는 지지부진한 모양새다. 10월말 기준 신선식품 수출액은 12억3950만달러로 지난해 대비 0.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5% 수준이다. 신선식품 수출 확대를 위해 정부가 집중 육성하기로 한 스타품목이라는 용어가 정책 현장에서 사라진 점도 눈에 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는 이상기후로 작황이 전반적으로 나빴고 밥상물가 문제도 있어 농가가 수출할 물량이 많지 않았다”면서 “과거처럼 특정 품목을 ‘스타품목’으로 지칭하지 않지만 신선식품 수출 확대를 위해 정책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는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은 “전체 수출액에서 신선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고 있다”면서 “수출할 신선식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도록 시설 투자 등에 당국이 힘써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