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2024년 경지면적 150만5000ha
작년 한해 8000ha 논·밭 사라져
올해 150만ha 아래로 떨어질 듯
정부가 식량 안보 등을 위해 경지면적 150만ha를 유지한다고 했지만 올해 이 목표가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이 목표를 달성할 구체적인 계획은 제시하지 않은 채 농지 규제 완화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어 무분별한 농지전용은 물론 식량안보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위태로운 경지면적 150만ha=윤석열 정부는 2022년 12월 제13차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 방안’을 발표, 44.4%인 식량자급률을 오는 2027년까지 55.5%로 끌어올리기 위해 농지면적을 150만ha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식량안보 등을 위한 마지노선으로 경지면적 150만ha를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150만ha는 올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통계청이 2월 27일 발표한 ‘2024년 경지면적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경지면적은 전년대비 0.5% 줄어든 150만5000ha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건물 건축(4000ha), 고령화 등에 따른 유휴지(2000ha) 발생 등이 원인이다.
2015년 167만9000ha였던 경지면적은 2017년 162만1000ha, 2020년 152만8000ha, 2023년 151만2000ha로 쪼그라들었다. 연평균 1.2%씩 줄던 농지면적 감소추세가 0.5%로 둔화되긴 했지만, 지난해에만 약 8000ha의 논·밭이 사라졌고, 이대로라면 올해 경지면적은 150만ha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농업진흥지역 이·전용 확대
상속·이농 농지상한 폐지
지자체 자율권 확대 등 모색
▲또 다시 농지 규제 완화 카드 꺼낸 정부=이처럼 정부가 약속한 경지면적 150만ha를 지키는 것이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정부는 오히려 농지 규제 완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국회에 제출한 ‘농지제도 개혁 방안(안) 설명 자료’에는 △이용·전용 범위 확대로 농지 활용도 제고 △농지 소유·임대 규제 완화로 생산 규모화, 농업 세대전환 촉진 △농지 보전·관리체계 개편으로 우량농지 보전, 지자체 자율권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세부실행계획으로 우선 소유의 경우 취득 후 자경 의무기간을 8년에서 3년으로 완화하고 농지위원회 심의를 생략하는 범위를 확대하는 등 취득 절차를 간소화한다. 주말체험영농, 시험·실습지, 전용 목적, 영농여건불리농지 취득 시 등에 대해선 심의가 폐지된다.
지자체가 계획을 수립해 지정한 지구에서는 주말체험영농을 목적으로 하면 진흥지역 내 농지를 취득할 수 있는 방안과 상속·이농으로 소유하게 된 농지의 소유 상한 폐지를 추진한다. 현재는 1ha까지 소유할 수 있다.
농지 관리에 대한 지자체 자율권도 확대한다. 농업진흥지역에 대한 지자체 기본계획 수립을 전제로 관리권한을 확대하고 농업진흥지역 외 농지 전용권한은 지자체에 대폭 확대한다. 진흥 지역 외 농지 전용 권한은 전부 지자체에 위임하고 지자체별로 수립한 농지 관리 기본·실천계획에 따라 지역별 진흥지역을 재지정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농지 전용 절차 없이 농지에 수직농장 등 농업 생산 관련 시설과 부대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농지의 이용 범위를 확대한다. 농업의 범위를 유통·가공업·기자재 등 농산업으로 확장해 농지 이용을 다양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외에도 임대차 허용범위도 개인은 3년 자경 후 자율 임대차를 허용하고 농업법인이 단독으로 농지이용증진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사업 시행 주체를 확대한다.
▲경지면적 150만ha 지키겠다던 약속, 공염불되나=이 같은 개편안이 실행되면 농지 전용과 무분별한 농지 개발 등이 늘어나 농지 보전이 더욱 위태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홍상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은 “이런 추세라면 내년 발표에선 경지면적이 150만ha 아래로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경지면적 150만ha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과 다르게 농지 규제 완화를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강조하다보니 농지의 적절한 이용과 미래를 위한 기반 정비 등에 대한 내용이 제도 개혁 방안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태연 단국대 교수는 “그동안 소유 규제는 완화하고 이용 규제를 강화하자고 했다. 그 과정에서 농지전용은 방어하는 것이 맞다”며 “정부가 경지면적을 일정 수준 유지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농지의 효율적 이용이 더 중요하다. 유휴농지를 비농업 쪽으로 전용하지 않고 농업분야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수직농장은 농지 전용 없이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이럴 경우 자칫 경지면적 등의 통계에서 수직농장이 빠질 수 있다. 농지 아닌 농지가 되어 버리는 상황”이라며 “농지제도 개편은 중장기적으로 다루고 살펴봐야 하지만 기본적인 근간조차 건드리고 있어서 안타깝다. 졸속으로 처리해 망가지면 어떻게 되돌리냐”고 말했다.
비농업인 농지소유 갈수록 증가
난개발·투기 확산 우려 고조
“농지보전 근간 건드려” 지적도
▲농지 투기 양산 우려=정부의 개편방향이 2021년 LH 사태처럼 농업법인을 악용한 농지 투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경기 화성갑) 의원은 2월 18일 농식품부 업무보고에서 “농지제도의 허점을 노린 비농업인들의 농지소유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문투자형 사모부동산투자사인 ADF가 용인 남사읍에 있는 농지를 오늘 사고 내일 파는 식으로 투기한 이력이 있다. 2021년 LH 사태처럼 농지에 대한 투기가 다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병선 교수는 2016년 제주도가 목적 외 사업인 부동산 중개업 등 소위 땅장사를 벌인 농업법인에 대한 해산명령 청구 절차를 밟은 사례 등을 제시하며 정부의 이번 개편안이 이 같은 사례를 재현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농업이 아닌 땅 구매를 목적으로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농지 구매 후 판매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들은 농지 판매 후 농업회사법인을 해산하거나 법인 역할을 못한 사례가 있다”며 “농지 소유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자체 권한 확대 맞나=중앙정부가 식량안보 관련 농지 이용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은 채 지자체의 권한만 확대한다면 무분별한 개발로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윤병선 교수는 “최소한의 규범 속에서 중앙정부가 컨트롤하고 지자체가 잘 이행하는지 점검해야 하는데 지자체에게 규제 완화 틀을 넓혀주면서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자칫 지역의 토호세력과 권력이 결탁해 농지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홍상 이사장은 “전체 농지이용에 대한 그림이 있는 상태에서 지자체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제시하지 않은 채 지자체에 권한을 위임하고 확대한다면 농업의 안정적인 생산 등의 측면에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태연 교수는 “지자체 권한을 확대하면 지자체장이 무분별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그런 사례는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며 “오히려 지역발전계획과 맞물려 활용할 수 있고 농지를 전용해 난개발 되는 것을 막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