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소속 의원들 중심으로 3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하 상생기금) 활성화 토론회를 연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야당 의원 58명은 지난해 ‘농업인의 날’을 맞아 상생기금 활성화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냈다. 도입 9년차를 맞은 상생기금 살리기 노력이 여태 이어지다니, '뉴스거리'다. 상생기금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무역 이득을 피해산업과 공유해야 한다는 논의 속에 대안 격으로 도입한 제도다. 2015년 한·중 FTA 발효를 앞두고 농업계가 반발하는 상황에서 국회의 비준 동의는 쉽지 않았다. 그해 11월30일 여·야·정은 1조원 규모의 상생기금 조성이란 약속으로 비준의 큰 산을 넘었다. 2017년부터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1조원을 걷어 농어촌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강제성을 띠는 무역이득공유제와 달리 자율적 기부를 원칙으로 했다. ‘1000억원, 1조원’이 이벤트용 수사(레토릭)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해 실적을 보면 민간기업은 2곳에서 3억원을 낸 게 전부고, FTA나 수출과는 거리가 있는 공기업들이 300억원을 보탰다. 민간기업들은 눈치가 보였는지 이후 참여가 늘어 2018년 9곳에서 52억원, 2019년 26곳에서 50억원을 기부했다. 수조원대 수익을 내는 대기업들의 십시일반 수준이다. 해가 지난다고 이런 흐름이 변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걷힌 상생기금이 346억원이었는데 민간에선 86개 기업이 209억원을 출연한 걸로 집계됐다. 기업당 2억여원꼴인데, 수출 호황으로 최대 실적을 낸 반도체기업은 직원들 보너스만 억대에 달한다고 하니 기금 이름이 민망할 지경이다. 상생기금은 제아무리 정부나 국회라 해도 기업에 기부를 강제할 수 없다. 내고 싶은 만큼 내도록 만들어졌는데 기업들이 눈길을 줄 일이 없다. 정치권이 국정감사장으로 대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호통을 쳐도 실적이 매년 20∼40%에 그치는 이유다. 기업의 실적이 이랬다면 ‘어닝쇼크’ 비상이겠지만 상생기금 문제는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천억원 빚을 갚는 일이 계속됐다. 상생의 객체일 뿐인 농민으로선 그만하고 싶은 상생이다. 정치권이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하고 현실적 모금 확대방안도 논의한다니 ‘이번에는’ 하는 마음도 든다. 잘되길 바라지만 그렇게 해서 잘될 일이라면 진즉 잘됐어야 한다. 9년째 살리기를 추진하는 상생기금, 내년이면 10년 수명을 다하는 이 제도는 우리 사회에서 즐겨쓰는 ‘상생’ ‘협력’이란 표현의 허울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돌아보면 우리나라는 대략 10년 주기로 굵직한 통상 의제가 굴기를 이뤘다. 30년 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이어 20년 전 무렵엔 최초의 FTA시대(칠레) 개막과 쌀 관세화 재유예 협상으로 바람 잘 날 없는 시기를 보냈다. 10년 전 한·중 FTA 발효는 거대 경제권과 경제영토 통합을 일단락 짓는 수순이었다. 대마부터 살리자는 대의에, 농업은 그런 격랑 속으로 끌려가기 일쑤였다. 올해는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통상 의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다. 미국의 상호관세 압박에 ‘내주는 카드’로 농업 아이템을 거론하는 일각의 목소리가 우려스럽다. 한국 농업은 국민 1인당 292㎡(88평)의 경지면적으로 쌀 자급과 고품질 과일·채소·축산물을 공급하며 식탁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국민을 살리는 농업의 의미를 헤아리지 않는다면, 국민을 위한 농업은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