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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한국농어민신문] (오피니언) 벼 재배면적 감축과 부당결부 금지2025-02-27 10:06
작성자 Level 10

[한국농어민신문] 

‘벼 재배면적 감축’과 ‘공공비축미 배정’ 사이에 인과관계는 없다. 두 제도의 목적은 전혀 다르다. 공공비축미 배정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 따라서 농림축산식품부의 이런 방침은 행정법의 기본원칙인 ‘부당결부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행정법의 기본원칙 중에 하나로 부당결부(不當結付) 금지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행정기관이 행정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그것과 실질적인 관련이 없는 반대급부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부당결부 금지 원칙은 행정권의 자의적인 행사를 통제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원칙이라고 설명된다.

부당결부 금지 원칙은 불문법적인 행정법의 기본원칙이었는데, 2021년 3월 23일 행정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제13조에 아예 명시가 되었다. “행정청은 행정작용을 할 때 상대방에게 해당 행정작용과 실질적인 관련이 없는 의무를 부과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성문법률에 명시가 된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모든 행정기관은 부당결부 금지 원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부당결부 금지 원칙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벼 재배면적 감축’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자율적’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여서 ‘벼 재배면적 감축’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월 4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8만 ha의 벼 재배면적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벼 재배면적 감축을 유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애꿎은 지방자치단체에 부담을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이 읍ㆍ면ㆍ동 사무소까지 전가되고 있다.

벼 재배면적 감축을 추진하더라도, 그 추진 주체는 양곡관리법과 「농업ㆍ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법조문의 주어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되어 있고,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위임할 근거도 분명치 않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는 벼 재배면적 감축 목표를 일방적으로 정해 놓고, 지방자치단체로 정책 이행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이것은 무책임한 것이고, 지방자치단체를 하부 조직으로 보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말로는 ‘자율’이고 ‘인센티브’를 줘서 이행을 독려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할당된 감축목표를 이행하지 못하는 지방자치단체에는 ‘페널티’를 주겠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감축을 잘한 지방자치단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그것은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량은 한정된 상황에서, 어떤 지방자치단체에게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사실상 ‘페널티’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성과가 우수한 지방자치단체에는 공공비축 미곡을 확대하여 우선배정하겠다는 것인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목표달성이 미흡한 지방자치단체에는 공공비축미 배정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이익은 결국 그 지방자치단체에 속한 농민들이 입게 된다.

그러나 ‘벼 재배면적 감축’과 ‘공공비축미 배정’ 사이에 인과관계는 없다. 두 제도의 목적은 전혀 다르다. 공공비축미 배정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 따라서 농림축산식품부의 이런 방침은 행정법의 기본원칙인 ‘부당결부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

문제는 더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감축을 잘하면 식량ㆍSOC 등 관련 정책지원사업에서 우대하겠다고 한다. 감축에 참여한 농업인에게는 지방자치단체와 농협에서 추진하는 각종 지원사업에서도 우대하겠다고 한다. 이것 역시 뒤집어 보면, 자신들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 주체에게는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벼 재배면적 감축과 이런 정책지원사업들 사이에는 실질적인 연관성이 없다. 이것 역시 부당결부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

지금은 가뜩이나 법치주의가 훼손되고 위협받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정부 부처가 법적 근거도 희박하고 행정법의 일반 원칙에도 맞지 않는 방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설사 아무리 필요한 정책이라고 해도, 적법절차의 원리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정책일 때에는 법적 근거도 명확해야 하고 부당한 수단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법치주의이다. 또한 민주적인 정책추진이 되려면 정책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농민들에 대한 설득이나 설명의 과정이 생략되어서는 안 되고, 목표달성을 위해 부적절한 수단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고 있는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은 중단하고, 원점에서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