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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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농정신문]‘벼 감산’ 꽂힌 농식품부, 쌀농업 기반 약화 부추기나2025-02-10 09:44
작성자 Level 10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의 일방적인 벼 재배면적 조정 정책이 국내 쌀 생산기반을 약화시켜 기후위기 시대, 전방위적 식량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경북 상주시 외남면 들녘에서 추수에 나선 농민들이 논둑에 있던 볏단을 갈무리하며 콤바인을 바라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벼 재배면적 감축’이라는 지상목표에 혈안이 된 나머지, 이후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를 향한 농민들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한편 직접적인 벼 감산 관련 실무를 떠맡게 된 지자체 공무원들로부터도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자체도 중앙정부의 벼 감산 기조를 따르는 것과 별개로, 사후 대책 미비 및 현장 농민들의 반발 가능성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감산 일정이 지나치게 빠르고 촉박하게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농식품부 벼 재배면적 감축, 어떻게 진행되나

농식품부는 어떤 논리로 벼 재배면적 감축을 주장할까? 벼 재배면적 감소율보다 국민 쌀 소비량 감소율이 더 크고 가파른 ‘구조적 공급과잉’ 양상 속에서 수확기 쌀값 하락이 농가소득 감소로 직결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이래 12차례 이상 쌀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정부개입’의 반복이 있었다는 게(따라서 재정부담도 늘어났다는 게) 농식품부의 입장이다.

또한, 농식품부는 윤석열정부 이래 사전 재배면적 감축을 위한 전략작물직불제, 즉 논콩·조사료 등 논에서 벼 이외 타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직불금을 지급하는 조치도 취했지만, 그럼에도 수익성 측면에서 벼를 재배하는 게 나아 다시 벼농사로 돌아섰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농식품부가 설정한 벼 재배 감축 총면적은 8만ha다. 서울특별시 총면적보다 약 2만ha 더 넓은 공간만큼의 벼 재배지를 줄이겠다는 뜻이다. 농식품부는 각 광역지자체별 쌀 생산량 비중에 맞춰 감축 목표량을 ‘할당’했다.

감축 방식과 관련해 농식품부는 ‘자율감축’ 기조를 강조한다. 각 지자체에서 할당받은 면적을 ‘알아서’ 줄이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기초지자체들은 농식품부·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 운영하는 농림사업정보시스템(AgriX)에 오는 28일까지 벼 재배면적 조정 유형별 세부이행계획의 전산 입력을 마무리해야 한다. 광역지자체는 농식품부에 관내 시군구의 감축 유형별 벼 재배면적 감축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이후엔 농식품부에 제출한 계획에 따라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유형을 배합해 농민들의 감축 참여를 독려·유도하는 게 지자체들의 역할이다.

첫 번째 감축 유형은 ‘농지전용’이다. 실제 개발행위로 인해 올해 벼 재배가 불가능하게 된 농지(허가 시점이 아닌 실제 개발행위가 일어난 시점의 농지)는 ‘감축 실적’으로 간주한다.

두 번째는 ‘일반벼의 친환경 벼 전환’이다. 다만 올해 친환경인증을 새로 받은 농지만 실적으로 간주하며, 실제 감축 면적의 20%만 감축 실적에 반영한다. 일반 벼 대비 친환경 벼의 수확량이 약 19% 적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했다는 게 농식품부의 입장이다. 예컨대 원래 1000평 논에서 일반 벼를 재배하던 농민이 해당 논의 무농약 인증(친환경인증 첫 단계)을 획득했다면, 1000평 전부가 아닌 200평만 실적으로 인정된다는 뜻이다.

세 번째는 ‘전략·경관작물로의 재배 전환’이다. 2025년도 하계 전략작물·경관보전 직불에 참여하는 신규 농지는 실적으로 반영한다는 의미다. 하계 전략작물직불 대상 품목은 두류·조사료·가루쌀·옥수수·깨(참깨, 들깨) 등이다.

네 번째는 ‘지자체가 개별지원하는 타 작물로의 재배 전환’이다. 위에 언급한 전략·경관작물과 별개로 각 광역·기초지자체에서 진행하는 논 타 작물 재배 지원사업 대상 품목으로 전환하는 논도 실적으로 간주된다.

다섯 번째는, 이상의 네 가지 유형을 활용해도 남는 ‘감축 할당 면적’은 ‘휴경 또는 부분휴경’으로 이행해도 감축한 것으로 인정된다. 부분휴경의 예시로는 ‘벼 이앙 시 테두리 안 심기’ 사례가 대대적으로 홍보되는 중이다. 예컨대 이앙기를 돌리는 구역만큼은 모를 심지 않는 ‘이앙기 돌림자리 테두리휴경’, 이앙기를 돌리는 구역과 논의 한쪽 부분을 남겨두는 ‘ㄷ형 테두리휴경’, 논 테두리 전체에 모를 심지 않는 ‘ㅁ형 테두리휴경’ 이 그 예시다.

말만 ‘자율감축’…농민 대상 정책 차별, 쌀 생산기반 약화 부추길 우려도

말이 자율감축이지, 자율감축에 동참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농가가 많은 지자체는 공공비축미 배정 과정에서 사실상의 불이익을 받는다. 벼 재배면적 감축 정도가 ‘우수’한 지자체는 공공비축미를 우선적으로 배정받음에 따라, 상대적으로 부진한 지자체는 배정량의 차등 감축을 감소해야 한다.

또한, 감축을 많이 한 지자체 및 지역농협은 각종 정책사업 과정에서도 우대받을 전망이다. 지자체는 자체 사업 대상자 선정 시 감축 참여 농가를 우선 지원하게 되며, 농협 역시 미곡종합처리장(RPC) 계약재배 및 무이자 경영자금, 농기계 지원, 출하장려금·교육지원사업비 지원 등에 있어 우수 감축 농가를 우대할 예정이다.

농민들은 △농민 경작자율권 및 생존권 침해 △식량주권에 필수불가결한 벼 생산기반의 파괴 △농민들의 쌀 정책 관련 대안 제시(양곡관리법 개정 등) 묵살 △쌀 수입(의무수입량 약 40만8700톤) 기조 유지 △정부 정책을 이용한 농민 대상 정책 차별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농식품부의 벼 감산 기조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벼 감산 기조는 최근의 객관적 벼농사 환경에 비춰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미 기후위기 속 벼 생산환경 악화(병해충 증가, 그에 따른 벼 품질 저하 등), 농촌 소멸위기에 따른 벼농가 감소 등으로 벼 재배면적은 이미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다.

올해 ‘2025 농업전망’에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발표한 쌀 수급전망에 따르면, 2025양곡연도의 벼 재배면적은 69만8000ha로, 2024양곡연도의 벼 재배면적 70만8000ha 대비 1.5% 줄었다. 2025양곡연도의 쌀 생산량 또한 직전 해의 370만톤 대비 3.2% 줄어든 358만톤이었다. 전략작물직불제 실시에 따른 재배면적 감소 및 출수기 이후의 고온·집중호우 등으로 등숙률이 저하하고 병해충(특히 벼멸구) 발생도 증가함에 따라 생산량이 줄어든 것이다.

벼 재배면적은 고령화, 농지전용 등의 요인으로 2026양곡연도 이후에도 계속 감소하리라는 게 농경연 측의 진단이다. 농경연은 2026양곡연도의 벼 재배면적을 68만2000ha로 예측하면서, 이 추세대로라면 2035양곡연도엔 62만3000ha로 감소(연평균 1%씩 감소)하리라고 전망했다. 다만 이는 농식품부 벼 재배면적 조정제 시행 건을 논외로 한 전망으로, 감축 대책 달성 수준에 따라 면적 감소 수준은 더 커지리란 예측이 제기됐다.

정작 농식품부는 인위적 감축만 ‘감축 실적’으로 인정하고, 재해 발생 등으로 인한 자연 감축 면적·생산량은 감축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달리 말해 자연 감축 요인은 사실상 무시한 채 인위적 감축에 최대한 속도를 내겠다는 뜻이다.

한편 쌀 소비량의 경우 농식품부 분석대로 장기간에 걸쳐 감소 중인 건 사실이다. 농경연 측은 2014~2023양곡연도 동안 쌀 소비량은 △식생활의 서구화 △대체 식품 소비 증가 등으로 연평균 1.6%씩 감소한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낮아지는 쌀 소비의 촉진을 위해 농협중앙회가 농식품부와의 공조하에 ‘쌀 소비촉진 운동’까지 전개하는 상황에서, 지속적 소비감소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대대적 벼 감산정책을 펼치는 건 기존 쌀 소비촉진 기조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농식품부 “2월 말까지 세부 감축계획 입력”…발등에 불난 지자체

한편 정부의 ‘자율감축’ 기조를 맞이한 광역·기초지자체들의 반응은 복잡하다. 열과 성을 다해 정부 기조를 따르려는 지자체들이 있나 하면, 농식품부의 정책 추진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며 현장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지자체들도 적지 않다.

정부 기조에 맞춰 벼 재배면적 감축 이행방안을 세운 지자체 중 하나로 충청남도를 꼽을 수 있다. 총 1만5753ha의 감축 면적을 할당받은 충남도는 △테두리휴경(부분휴경) 9177ha △전략작물 전환 4846ha △친환경 벼 전환 438ha △농지전용 891ha △휴경 314ha 등의 내용으로 감축 이행계획을 세웠다. 충남도는 특히 테두리휴경 확대를 앞장서서 밀고 있다. 위에 거론한 테두리휴경 방식들도 충남도에서 대대적으로 홍보 중인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농식품부는 지난 5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지자체·관계기관 대상 벼 재배면적 조정제 설명회를 열었다. 벼 재배면적 조정제의 취지 및 내용, 각 지자체·농협 등 유관조직의 역할, 그리고 벼 재배면적 조정제 시행 이전부터 벼 감산에 앞장섰던 지자체들의 ‘모범사례’를 소개하려는 취지에서였다.

이날 참가한 지자체 관계자 중 일부는 농식품부의 벼 감산 일정이 지나치게 빠른 것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했다. 특히 오는 28일까지 각 지자체별로 AgriX에 벼 재배면적 조정 유형별 세부이행계획의 전산 입력을 마무리하라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설명회에 참가한 A기초지자체 관계자는 “올해 벼농사를 하시는 분들은 이미 지난해 보급종 신청을 다 완료했고, 벼농사 관련 농자재 사업 신청도 이미 지난달 완료한 상태”라며 “이 농가들을 설득해 타 작물로 전환하게끔 노력은 하겠지만, 2월 말까지 필지별로 세부이행계획을 입력하라는 건 힘들 듯하다. 농가들이 직접 (감산에) 참여하겠다는 의향을 밝혀야 세부 필지별 입력이 가능한데, 목표 면적을 실질적으로 맞춰서 등록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농식품부 측은 이상과 같은 문제 제기에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아무쪼록 2월 말까지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입장만을 반복했다. 어쨌든 8만ha 목표를 채우기 위해선 2월 말까진 지자체별 이행계획이 세워져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날 설명회를 마치고 나온 지자체 관계자들은 “(어떻게 2월 말까지 다 입력할지) 막막하다”, “농민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걱정이다” 등의 반응을 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벼 감산과 관련해 지자체 공무원들이 큰 혼란을 느끼는 상황에서, 2월 말까지 AgriX 입력을 마치라는 ‘협조 요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AgriX 입력 과정에서 현장 벼 재배 농민들과의 소통 경험이 부족한, 상대적으로 젊은 공무원은 현장 실정과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으로 내용을 입력해 더욱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