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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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농정신문]‘벼 감산 드라이브’가 초래한 일본 쌀 대란…농식품부는 교훈 못 느끼나2025-02-10 09:47
작성자 Level 10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벼 재배면적 조정 정책을 펼치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옆 나라 일본이 최근 최악의 쌀 대란을 겪는 걸 목도하면서도 벼 감산 기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일본의 상황을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가게마다 텅 빈 쌀 매대, 폭등하는 쌀값

지난해 말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소비자 물가지수. R6(2024년을 뜻함) 시기에 들어 유독 천정부지로 물가지수가 치솟는 그래프(물가지수 162.9)가 쌀의 물가지수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 제공

지난해 말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소매물가통계. 파란 선은 고시히카리 쌀, 녹색 선은 고시히카리 이외 쌀의 소매가격을 뜻한다. 그래프 상 R6(2024년을 뜻함) 시기 4월부터 두 가지 쌀 모두 소매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 제공
지난해 여름부터 일본 전역에서 본격화된 쌀 대란으로 인해 도쿄·오사카·교토 등 일본 도시 거주민들은 그 어디서도 쌀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도시민들은 마트·슈퍼마켓의 쌀 진열대가 텅텅 빈 걸 보며 허탈해했다. 시민들은 5~6군데의 슈퍼마켓을 돌아다니고서야 간신히 쌀을 살 수 있었다. 그나마 겨우 구입한 쌀의 가격은 평상시 5kg당 쌀값인 2000엔(한화 약 1만8600원) 대비 1000엔이나 폭등한 3000엔(한화 약 2만8000원)이었다.

후쿠시마현의 한 가게에선 3일 만에 겨우 쌀 20봉지를 입하했지만 단 2분 만에 쌀이 매진됐고, 시즈오카현에선 쌀 50봉지가 1시간 만에 매진된 사례가 TV 뉴스를 탔다. 쌀 주산지인 홋카이도와 아키타현에서마저 쌀 가게 매대가 텅텅 비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학교급식·복지시설에서 쌀을 조달하지 못해 학생·영유아·노인 등의 먹거리기본권이 위협당하는 사례, 매년 진행하던 ‘카레 페스티벌’이 쌀 부족으로 취소되는 사례(지바현 야치요시)까지 나타났다.

지난해 말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소비자 물가지수(소비자가 구입하는 상품·서비스의 가격변동을 측정하는 지표)’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00이었던 쌀의 물가지수는 2021~2023년 100 미만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4월부터 가파르게 오르더니 7월부턴 ‘하늘을 찌르는 추세로’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의 쌀 물가지수는 162.9로, 2020년 1월 대비 62.9% 상승했다(표).

지난해 쌀 소매가격 역시 급상승했다. 총무성의 ‘소매물가통계’에 따르면, 2020~2023년 5kg당 2000~2500엔 사이를 기록했던 ‘일본 대표 쌀 품종’ 고시히카리 소매가는 지난해 10월 4018엔으로 폭등했다. 2022년 1월 기준 2000엔 선을 기록했던 고시히카리 이외 쌀 품종 평균 소매가 역시 지난해 10월 3868엔으로 1.8배 가량 올랐다.

농민운동단체인 일본농민운동전국연합회(노민렌)는 정부를 향해 “쌀 비상사태를 야기한 정부는 주식(쌀)의 안정적 공급을 책임져라”며 △정부 비축미 방출 통한 푸드뱅크·어린이식당 쌀 무상제공 확대 △식량지원제도 창설 △쌀 증산 및 비상사태 대비용 쌀 비축 △농가가 안심하고 쌀을 생산해 국민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정책으로의 전환 등을 촉구했다.


지난해 가을 일본 농민운동단체인 일본농민운동전국연합회(노민렌)가 발간한 '쌀 비상사태' 관련 호외 신문. 지면 상단에 쓰인 글은  '쌀 비상사태. 원인은 정부의 실정. 정부는 주식의 안정공급을 책임져라!'이다. 지면 우측 상단엔 텅 빈 쌀 매대의 사진이 실렸다. 노민렌 제공
장기간 이어진 ‘쌀 생산 감축’ 상황과 내외 변수 겹치자 터진 쌀 대란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본 쌀 대란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다수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에 따른 기록적 폭염으로 인한 쌀 생육 저하 및 쌀 생산량 격감 △난카이 해곡 대지진(90~150년에 한 번씩 일본 앞바다 해저에서 발생한다는 대지진) 경고에 따른 쌀 사재기 급증 △코로나19 이후 모처럼 해외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른 쌀 수요 급증 △농촌 소멸위기 속 쌀 생산농가 격감 등을 쌀 대란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한다.

그러나 그 어떤 요인보다도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1970년 이래 50년 이상 이어져 온 일본 정부의 ‘감반(減反) 정책’, 즉 쌀 생산 억제를 위한 장기간의 벼 재배량 감축정책이었다. 1960년대부터 미국의 ‘정책 유도’에 따른 학교 빵 급식 및 영양개선운동으로 일본에선 밀 소비량이 늘어난 반면, 쌀 소비량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쌀 재고 문제 해결 및 가격 안정, 그리고 당시부터 시작된 농촌 인구 감소문제 대응 등을 명분 삼아 1970년부터 감반 정책을 실시했다. 주요 내용은 △벼농사용 논 신규 개간 금지 △정부미 매입한도 설정 △자주유통미 제도(일부 양질의 쌀에 한해 정부 대신 민간 도매업자에게 직접 판매토록 하는 제도) 도입 등이었다. 사실상 쌀농사에 대한 ‘국가 책임 농정’이 ‘시장주의 농정’으로 바뀐 해가 1970년이라 할 수 있다.

감반 정책 이후 일본의 벼 재배면적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감반 정책 실시 직전 해인 1969년 317만ha였던 일본 전역의 벼 재배면적은 1975년 272만ha, 1985년 232만ha, 1995년 211만ha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1967년 약 1309만톤이었던 일본 전국 쌀 생산량도 1985년 1161만톤, 1995년 약 900만톤으로 감소했다.

감반은 21세기에도 계속됐다. 2013년 152만ha였던 주식용 벼 재배면적은 2023년 124만ha로 감소했다. 쌀 생산량 역시 2013년 818만톤에서 2023년 661만톤으로 줄었다. 2018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는 48년 만의 감반 정책 폐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감반’은 이후에도 멈추진 않은 셈이다.

감반의 대가는 일상적으로 나타나진 않았다. 그러나 기후위기 및 국내외 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일본 사회에 들이닥쳤을 때, 일본 사회는 감반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1993~1994년 발생한 쌀 대란은, 감반 정책으로 과거보다 쌀 생산기반이 약화된 상태에서 1993년의 기록적 흉작까지 겹쳐, 기존 계획상 쌀 생산량(약 1000만톤) 대비 턱없이 낮은 783만톤의 생산량을 기록한 데 따른 쌀 부족 사태였다. 쌀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 정부는 미국·태국 등지로부터 대량의 쌀을 수입해야 했다.

현재 일본의 쌀 대란 역시 일본 식량주권의 핵심 요소인 쌀 생산기반을 파괴하며 장기간 진행된 감반 정책, 이에 더해 기후위기 심화 쌀 생산농가 감소, 난데없는 수요 급증 등의 요인이 겹쳐 발생한 역대급 쌀 대란이었다. 우리나라 농식품부는 일본의 이상과 같은 사례로부터 아직 교훈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국 쌀 대란 발생 시 일본 쌀 대란보다 훨씬 심각할 가능성 높아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쌀 대란 발생 시 일본보다도 훨씬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왜일까?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앞서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해 주식용 쌀 대신 전략작물(밀, 콩 등), 가루쌀, 사료용 쌀 등으로의 작목 전환을 유도한 바 있다. 일본은 현재 우리나라와 달리 △전략작물의 세세한 품질 관리를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 노력 △전략작물 판로가 최대한 확보될 수 있도록 계약재배 등을 통한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타 작물 전환이 활성화될 수 있었다는 게 송동흠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운영위원장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와 같은 전략작물 가격경쟁력 확보 방안 및 판로 확보 방안도 구체적으로 세워지지 않은 채, 그저 ‘벼 재배면적 조정’ 기조에만 꽂힌 채 전략작물 재배 전환을 독촉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본처럼 전략작물 재배 확대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반면 쌀 생산기반은 기반대로 약화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송 위원장은 또한 “일본은 주식용 쌀 면적 감소 과정에서 남는 생산 부분을 사료용 쌀 재배 등으로 전환하면서, 생산면적 감소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부족분을 줄일 수 있는 완충지대는 확보했다. 이 완충지대를 활용하면 일본은 2024년 기준 (논 면적을 통해 환산 시) 약 684만톤인 쌀 생산량을 약 819만톤까지도 늘릴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이러한 완충지대마저 없는 상황이니 (벼 감산 정책 현실화 시) 훨씬 심각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