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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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한국농정신문]‘극악’ 치달은 생산비, 결국 ‘작목 전환’·‘폐농’으로2025-01-22 09:37
작성자 Level 10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생산비, 항목 구분 없이 꾸준히 상승 중
농산물 가격, 십수 년 전과 다를 바 없어
농민들 “죽지 못해 살길 찾아 나선다”

파프리카 대신 방울토마토를 재배 중인 경남 고성의 시설하우스에서 지난 14일 한 외국인노동자가 토마토 줄기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파프리카 대신 방울토마토를 재배 중인 경남 고성의 시설하우스에서 지난 14일 한 외국인노동자가 토마토 줄기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 번 오른 생산비는 절대 내리는 법이 없다.”

현장 농민들을 만날 때면 종종 듣는 이야기다. 인건비는 물론 각종 농자재값은 대내외 여건과 그로 인한 원자재 수급 상황에 따라 폭등에 폭등을 거듭하지만, 여건과 상황이 나아진다고 결코 원래 수준으로 하락하진 않는다. 게다가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최근의 환율은 기름값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비료와 농약뿐만 아니라 비닐 등 농자재 다른 품목의 가격에도 작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적지 않은 시설 농가가 난방에 활용하는 면세유를 예로 들어 2020년 12월 1L당 633.77원이던 등유 가격은 꾸준히 올라 1년 뒤인 2021년 12월 947.15원을 기록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가 요동치며 면세등유 가격은 2022년 3월 1127.18원으로 상승했고 7월엔 1486.25원까지 치솟으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면세등유 평균가격은 1L당 1122.39원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전기요금도 오름세다. 전기요금은 한국전력공사의 적자를 이유로 분기마다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농사용전기 전력량요금(고압-겨울철)만 따져봐도 지난 2022년 1분기 대비 올해 1분기 약 79% 인상된 상태다. 3년 동안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상승 폭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탄소 배출을 이유로 화석연료 사용을 지양하는 방침과 함께 정책 유도로 시설농가 난방 방식을 전기로 전환한 바 있다. 여기에 스마트팜 확산 기조까지 더해지며 최근 농가의 전기 사용량은 날이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다. 이로 인해 시설농사가 주를 이루는 경남 등의 지역에선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파산하는 농가가 적잖이 확인되고 있다.

지난 14일 경남 진주에서 20년 넘게 파프리카를 재배했다는 농민 하현수씨는 “1ha 시설하우스 기준으로 1월 한 달 난방하는데 2년 전엔 1500만원가량 들었다면 지금은 전기요금이 2500만원 넘게 나온다. 한 달에 전기요금만 2500만원 넘게 나오는데 파프리카 가격이 그에 따라 한 박스당 15만원씩 하는 것도 아니고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고 전했다.

이어 하씨는 “정부에서 대형화, 시설화 부추기며 지금 이 사달이 났는데 정작 지금의 현장 상황은 ‘나 몰라라’하고 있다. 지금 주변에서 작목을 전환하는 등 살 길 찾아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라며 “더이상 시설화 부추기지 말고 별 도움 안 되는 차액 보조니 이런 것보다 농사용 전기를 부과세 환급 대상에 포함시켜 주고, 작목도 쿼터제 도입 등으로 쏠리지 않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농민 A씨도 “전기요금, 기름값만 오른 게 아니고 하우스 자잿값, 인건비 모두 올랐다. 1ha 시설하우스 신축하는데 몇 년 전엔 12억원가량 들었다면 요새는 18억원 이상이 필요하고, 인건비도 10년 전엔 한 달 기준 90만원, 100만원 정도에서 지금은 최저임금 적용할 경우 230만원이 훌쩍 넘는다”고 토로했다.

 

장바구니 물가 논란 지속되지만

십수 년 전과 비교 시 차이 없어


농업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는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산물의 지속 생산보다 장바구니 물가를 더욱 걱정하고 있다. 생산비 지원에는 단 한 푼의 예산도 배정하지 않고 특정 품목의 가격 하락을 위한 할인 지원 등의 예산만을 날로 키워가고 있다. 설, 추석 등 명절뿐만 아니라 급락을 반복하는 시장가격에 일희일비하며 쏟아붓는 예산이 실질적인 역할을 해내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뒤따르지만, 오늘날 농산물 가격이 생산비 인상 폭에 견줘 제대로 형성되고 있는지도 짚어볼 문제다.

생산비 인상 추세에 비례해 농산물 가격도 그 수준에 맞춰 형성돼야 농가 경영의 지속성이 담보된다. 하지만 날로 비싸지는 생산비는 고려 않고 농산물 가격 낮추기에만 매진 중인 만큼 높아지는 생산비와 농산물 가격의 간극을 메우는 건 농민들 차지가 되고 있다.

언론을 비롯해 농업·농촌 정책을 총괄하는 농식품부마저 장바구니 물가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지만, 실제 농산물 가격은 수년, 심지어 십수 년 전과 비교해 폭등했다고 보기 어렵다.

경매를 통해 시장가격이 정해지는 만큼 반입물량과 소비 상황에 따라 등락을 보이지만, 농산물 가격은 이상하리만치 세월을 거슬러 제자리걸음을 지속 중이다. 예를 들어 5kg 상자 단위 노랑 파프리카(상품)는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서 지난 2009년 1월 평균 4만5332원에 거래됐다. 오히려 지난해 1월 평균 경락가인 4만4118원보다도 높다. 뿐만 아니라 지난 15일엔 평균 경락가가 3만3562원을 기록하며 오히려 16년 전인 2009년 1월 평균 거래가보다 낮은 모습을 보였다.

딸기 역시 마찬가지다. 4년 전인 2021년 1월 14일엔 2kg 상자 기준 상품 딸기가 평균 3만276원에 거래됐고, 2022년 1월 14일엔 3만7567원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2023년 1월 13일 상품 딸기 2kg 상자 평균 경락가는 2만8350원으로 하락했으며, 지난 14일 경락가는 3만4436원으로 오히려 3년 전인 2022년보다도 하락했다.

3년 새 79%나 오른 전기요금은 물론 물가인상률조차 반영하지 못한 실정이다.

파프리카에서 토마토·딸기·고추로

방치돼 망가진 시설하우스도 곳곳에


충실하게 오름세를 그리고 있는 생산비와 상반되게 제자리걸음 중인 농산물 가격 탓에 농민들의 한숨은 날이 갈수록 짙어가고 있다.

이에 시설농가가 집약된 경남 등지에선 생산비가 보다 덜 들어가는 방향으로 경영 방식을 바꾸거나 작목을 전환하는 등의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파프리카는 겨울철에도 실내 온도를 20℃ 이상 유지해야 하고, 양액 전기전도도도 높은 수준을 필요로 해 생산비 인상에 따른 농가 부담이 큰 작목이다. 반면 딸기의 경우 하우스 내부 온도를 10℃ 정도로 유지하면 되고, 전기전도도도 4.0 수준인 파프리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 정도로 맞추면 된다. 현장 농민들에 따르면 이 경우 난방에너지는 3분의 1 수준, 양액비료는 4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게 가능하다. 이에 최근 파프리카 대신 딸기, 방울토마토, 꽈리고추 등을 재배 중인 농가가 늘고 있다.

농민 하현호씨는 20년 넘도록 파프리카를 재배해 수출한 선도 농가로 손꼽혔지만 폭등하는 생산비 파고를 맞닥뜨린 뒤 난방 방식을 전기에서 화석연료로 바꾸고 재배 작목까지 꽈리고추로 변경했다.

파프리카에서 방울토마토로 작목을 전환한 농가도 있다. 농민 하현영씨는 “양액 재배를 하다 보니 다른 작물보다 비룟값이 많이 드는데 코로나19 전후로 비룟값이 80% 이상 올랐다. 파프리카 키우는데 필요한 탄산가스(이산화탄소)도 kg당 250원에서 410원으로, 인건비도 수당 합치면 2배 이상 나가는 실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파프리카는 9월 중순 이후부터 난방을 시작해 이듬해 5월 말, 6월 초까지 난방을 하는데 3000평 기준 2022년에 1억원 정도 들어가던 난방비가 2023년엔 2억원 넘게 들어갔다”며 “파프리카 가격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20년 넘게 키우던 파프리카 대신 방울토마토를 키우고 있는데, 가격이 안정적인 것도 아니고 상황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정부에서 뭐 도와주는 것도 없고 다들 죽지 못하니 각자도생으로 방법을 찾아 나선 상태다”, “차라리 정부에서 손 떼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다. 전기난방하라고 지원해주고 다들 이 사달이 난 것 아니냐”라고 자조 섞인 말을 건넸다. 이어 “도산하기 전 뭐라도 해보자는 각오로 방법을 찾아 나서고는 있는데 문제는 시설 규모가 크다 보니 특정 작목이 현 시설에서 키우기 적합하다는 게 알려질 경우 해당 작목으로 재배가 쏠려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지우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농민들은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생각한 경우 손을 놔버리는 경우도 많다. 곳곳에 방치된 시설 대부분이 생산비 때문에 폐농한 농가 소유다”라고 전했다.

치솟는 생산비를 감당하지 못해 폐농한 경남 진주 한 파프리카 농가의 시설하우스. 한승호 기자

치솟는 생산비를 감당하지 못해 폐농한 경남 진주 한 파프리카 농가의 시설하우스. 한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