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에 비전이 있다고 생각해 중견기업을 그만두고 빈 농지를 구입했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육성자금을 받지 못해 귤 묘목을 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7월부터 농지를 구입할 때 받은 대출금 이자를 내야 하는데 갚을 길이 없습니다.”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자금을 받아 제주에서 농사를 지으려던 양미옥씨는 13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 자금을 대출받지 못해 빚쟁이 신세에 처한 청년농·후계농들이 ‘후계농 육성자금 배정운영 피해자 모임(이하 피해자 모임)’을 구성하고 ‘자금배정운영 피해대책 요구 규탄회’를 개최한 것이다.
후계농 육성자금은 청년농·후계농으로 선발된 이들에게 최대 5억원까지 영농자금을 저리(연리 1.5%)로 융자해주는 사업이다. 정부의 청년농 선발 규모가 늘어나면서 지난해는 예산이 8월에 조기 소진될 정도로 대출 수요가 많았다. 올해도 자금이 조기 소진될 것을 예상한 농식품부는 대출자 선정 방식을 기존 선착순에서 선별로 변경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대출을 받지 못한 청년농·후계농들은 올해초 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믿고 농지 매매계약 등을 체결했지만, 선정 방식 변경이 사전에 충분하게 안내되지 않아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자 모임은 이날 집회에서 “피해 구제를 위해 추가 예산을 신속히 편성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농식품부의 평가 방식도 문제 삼았다. 영농을 시작해야 가입할 수 있는 농작물재해보험의 가입 여부 등을 선별 평가표에 포함하는 등 청년농·후계농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평가 방식으로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개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부가 평가 방식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통일되지 않은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해 청년농·후계농의 불신과 혼란을 초래했다”며 “후계농 육성자금 사업의 운영상 문제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청년농·후계농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 모임에는 전국적으로 600여명이 가입했고 이날 집회에는 70여명이 참가했다. 김다솜 피해자 모임 대표는 “농식품부가 이번주 안으로 피해를 본 청년농·후계농과 간담회를 열겠다고 했다”며 “간담회에서 구체적인 피해 구제 방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2월까지 집회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사태가 재정당국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농연은 “올해 자금 수혜 인원이 대폭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지난해 국회에 제출된 ‘2025년도 예산안’에 신규 대출 규모가 전년 대비 2000억원 감소한 6000억원만 반영됐다”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관련 예산 추가 확보를 위해 범정부·범국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