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자금 부족 문제에 시달렸던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자금이 연초부터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가 대출 선정 방식을 선착순에서 선별로 바꾸면서 심사에서 탈락한 청년농의 불만이 높아진 탓이다.
후계농 육성자금은 청년농과 후계농에게 영농자금을 저리로 융자해주는 사업으로 청년농 규모가 늘어나고 대출 조건이 매력적이어서 지난해부터 자금 수요가 급증했다. 지난해 8월에는 예산이 조기 소진돼 신규 대출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지난해 11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융자 대상 선정 방식을 선착순에서 선별로 변경하는 지침을 내놓으며 벌어졌다. 해당 지침은 영농 계획서,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여부, 관련 농업교육 수료 시간, 대출 상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후계농 육성자금 대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지난해말부터 올해초까지 선정 결과가 속속 발표되는 가운데, 대출을 승인받은 청년농은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후계농 육성자금 경쟁률은 약 4대 1 수준이다.
대출이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미리 농지 계약서 등을 작성한 후계농들은 계약 불이행에 따른 피해를 떠안게 됐다. 지난해 자금 조기 소진으로 대출을 받지 못한 전남 담양의 한 청년농은 “정부가 예산이 편성되면 지난해 대출을 받지 못한 대상자를 우대해주겠다고 했지만, 선별 과정에서 탈락했다”며 “지난해부터 시설하우스를 세우려고 준비했지만, 대출이 안돼 계약금을 날리게 됐다”고 털어놨다.
신청 기한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상자 선정 방식 변경 지침은 지난해 11월25일 발표됐다. 후계농과 청년농이 자금을 대출받기 위해선 12월9일까지 신청서와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했다. 전남 고흥의 한 청년농은 “자금을 신청하는 데 필요한 신청서·영농계획서 등을 작성하는 데 한달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면서 “2주라는 기한을 맞추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서류를 작성했다”고 했다.
청년농과 후계농들은 정부가 ‘청년농 3만명 육성’이라는 국정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예산과 선정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울러 청년농·후계농에 선정되면 육성자금 5억원 대출이 가능할 것처럼 홍보하고 정작 선정된 이후에는 다시 선별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후계농 육성자금 신청은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진행된다. 상반기 심사에서 탈락한 인원은 하반기에도 대출 신청이 가능하지만, 이들이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상반기 중에 신규 청년농·후계농이 추가로 선정되면 이들과도 대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도 이번 방침이 예산 부족에 따른 고육지책이라는 입장이다. 올해 후계농 육성자금 신규 대출 규모는 60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보다 2000억원 감소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도 올해 예산안을 심사할 당시 후계농 육성자금 증액을 의결했지만 최종단계에서 반영되지 않았다.
농업계에선 추가경정예산을 통해서라도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병호 한국4-H본부 사무부총장은 “정치권에서 후계농 육성자금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 더이상 자금 소진으로 청년농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와 올해 대출을 받지 못한 대상자에게 추가로 자금을 배정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효·양석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