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영암의 A씨는 지난해 ‘청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된 뒤 인근 농가의 축사를 4억2000만원에 매입하기로 계약했다. 청년농이 5억원까지 빌릴 수 있는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자금을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금이 조기 소진되면서 대출이 불발된 탓에 계약을 이행하기 어려워졌다. 상대 농가는 축사 매도를 위해 가축과 사료를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팔았다면서 A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다. A씨는 부모님 돈을 급히 빌려 2억2000만원의 계약금을 우선 지불했다. 올해 대출이 나오면 부모님 돈도 갚고 잔금도 치르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이마저 최근 산산조각 났다. 올해 갑자기 도입된 대출 선별 과정에 탈락하면서다. 지난해 이후 A씨는 장밋빛 영농의 꿈은커녕 빚쟁이 신세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후계농 육성자금 관련 피해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본지 1월8일자 1면 보도). 예산 부족으로 빚어진 이번 사태의 대안으로 하반기에 배정된 후계농 육성자금을 상반기로 당겨 집행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본지가 8일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영암·무안·신안)실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후계농 육성자금 배정 인원은 1033명으로, 신청 인원(3845명)의 27%에 불과했다.
후계농 육성자금은 농업 미래 인력 육성을 국정과제로 내건 정부의 간판 정책 중 하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청년농·후계농으로 선발된 이들에게 최대 5억원까지 영농자금을 저리(연리 1.5%)로 융자해준다. 이를 5년 거치 후 20년에 걸쳐 상환하면 된다. 그런데 청년농·후계농 선발 인원이 계속 늘어나는 데다 대출 조건도 매력적인 까닭에 자금 수요가 폭증했고, 지난해엔 신규 대출 잔액이 8월께 조기 소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문제는 올해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서 신규 대출 규모가 지난해 8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더 줄었다는 점이다. 올해도 자금 조기 소진이 우려되자 농식품부는 대출 신청을 상·하반기로 나눠 받기로 하고, 종전 선착순 방식이 아니라 평가를 통해 ‘선별’ 배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청년농·후계농으로 선발된 이들이 대출을 받기 위해 또 한번 평가를 거치게 된 셈으로, 이 과정이 사전에 충분히 안내되지 않으면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심각한 혼란을 겪는 건 지난해 청년농·후계농에 선발됐지만 대출을 받지 못한 이들이다. 올해는 당연히 대출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농지 등의 매매계약을 체결한 이들 상당수가 갑작스레 도입된 대출 평가에서 탈락하면서 경제적 피해를 호소했다. 서 의원실에 따르면 충북 증평, 충남 태안, 전남 완도, 경북 울진, 경남 의령 등에선 신청자 전원이 탈락했다.
평가 과정에서 청년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평가지표도 활용됐다. 최종 평가를 담당하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은 평가 항목에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여부, ‘청년귀농장기교육’ 참여 여부 등을 포함했다. 이를 두고 한 청년농은 “농사를 시작하지 않은 청년농이 재해보험에 어떻게 가입하느냐”면서 “또 사전 안내도 없이 다양한 교육 중 특정 교육에만 가점을 부여한 것도 특혜성 문제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청년농에 선발됐지만 자금 조기 소진으로 대출을 못 받은 경북 상주의 B씨는 “올해는 대출이 나올 거라 기대하고 지난해말 공사업체와 계약금 없이 성토공사를 진행했다”면서 “이를 증빙하는 계약서와 세금계산서도 제출했는데, 농정원이 계약금 이체증이 없다는 이유로 대출 배정을 해주지 않아 공사비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주목할 점은 추가 대출을 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서 의원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장은 하반기에 배정된 자금을 상반기에 우선 집행해 피해자를 구제하자”고 제안했다. 올해 6000억원 중 하반기 배정 규모는 2150억원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하반기에 자금이 필요해 상반기에 신청을 안한 이들이 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조만간 청년농 단체로부터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