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박현렬·김신지 기자]
벌꿀등급제 본사업이 지난해 12월 시행됐다. 2014년 1월 시범사업으로 제도가 시행된 지 10여 년 만이다.
2014년 처음 시범사업으로 시행된 벌꿀등급제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시장개방에서 국내 양봉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내산 벌꿀 품질향상과 품질정보 제공으로 소비자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됐다.
벌꿀등급제 시범사업 기간에도 등급제가 자리 잡기 위한 전제조건 등이 제시됐음에도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10개월이 지난 현재도 저조한 참여율과 검사 기관 부족 등으로 벌꿀등급제는 제대로 안착되지 않고 있다. 벌꿀등급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어떤 방안이 필요한지 짚어봤다.
# 벌꿀등급제 시행 10개월
벌꿀등급제는 시범사업과 동일하게 3개 등급 체계를 유지하며 자율등급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등급 판정 항목은 △수분 △과당/포도당비 △히드록시메틸푸르푸랄(HMF) △향미 △색도 △결함 △탄소동위원소비율 등 7개다.
예를 들면 아카시아꿀이 최고 등급인 1+등급을 받기 위해선 수분 함량이 20% 이하여야 하며 과당/포도당비는 1.5 이상, HMF(㎎/㎏) 3 이하, 색도 1∼3 사이, 탄소동위원소비율 -23.5‰(Promille, 천분율)이 필요하다.
또한 밀원수의 일반적인 향미를 갖고 있고 발효 화학물질 등 다른 원인으로 인한 불쾌한 향이 없어야 하며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결함이 전혀 없는 꿀이어야 한다.
벌꿀등급제 시행은 맛과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는 사양꿀과 천연꿀을 구분하고 외국산 벌꿀이 국내 벌꿀시장을 잠식하면서 그 필요성이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들의 요구로 2014년 벌꿀등급제 시범사업이 시작됐으며 2021년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통해 지난해 본 사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한우나 돼지와 같은 의무등급제가 아니라 자율등급제이기 때문에 참여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등급제가 실시된 꿀이 전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러한 참여율은 시범사업 기간 내에도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전체 양봉농가 중 참여농가는 10%에 불과해 9년의 시범사업 기간 내내 필요성에 의문이 따른 것이다.
이에 앞으로 벌꿀등급제가 자리 잡기 위해선 우선 검사 기관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재 벌꿀등급 판정 검사 기관은 한국양봉협회와 한국양봉농협 두 곳이며 일반성분 12종과 동물용의약품 12종에 대한 검사가 이뤄진다.
천연꿀의 벌꿀 생산은 2017년 1만1216톤, 2018년 5396톤, 2019년 7만9099톤, 2020년 1만408톤, 2021년 2만5029톤으로 불규칙한 상황이다. 이에 농가들의 수취가격도 안정되지 않으며 판로 또한 지인 간 직거래, 지역의 로컬푸드, 온라인, 벌꿀 전문 판매 업체, 대형유통업체 등 다양하다. 벌꿀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판매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품질을 평가받은 물량은 전체의 20%도 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벌꿀등급제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품질을 검사할 수 있는 기관이 확대돼야 하는데 현재는 2곳에 불과해 물리적으로 전수 검사를 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벌꿀 1드럼에 대한 품질을 검사하는 비용으로 10만 원이나 들어 농가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들 시설에선 현행 물량을 겨우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최소한 도별로 1곳 이상의 검사 시설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많은 농가가 등급제에 참여하도록 소포장을 확대 지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기업을 검사기관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회사에 돌아가는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 벌꿀 검사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지자체에서 양봉과 관련해서 다양한 정책과 예산을 수립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소재의 대학을 특성화해 육성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등급제에 참여한 벌꿀이 더 많이 소비되도록 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용래 한국양봉농협 조합장은 “전국 로컬푸드 직매장이 673곳에 달하는데 해당 직매장에서 판매하는 벌꿀은 모두 등급제에 참여한 벌꿀로만 함으로써 등급제 시행을 장려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 천연꿀, 사양꿀 엄격한 구분 필요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천연꿀은 꿀벌이 꿀샘식물에서 채취한 항산화, 항염증 등 생리활성 물질, 아미노산, 무기물, 비타민 등 다양한 기능성 물질이 포함돼 있으나 설탕물로 생산한 사양꿀에는 기능성 물질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사양꿀에는 트랜스-2-데센다이산이라고 하는 꿀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다. 이 물질은 천연꿀에서는 극미량이 존재하며 꿀샘식물에서 채취한 기능성 물질과 달리 꿀벌이 설탕으로 꿀을 만드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분비된다.
꿀벌이 지속적으로 꿀샘식물 대신 설탕물을 섭취했을 경우 꿀벌의 증식과 질병 발생에 대한 저항력에 관여하는 생체 내 물질이 현저하게 감소한다. 설탕물 섭취 군에서는 생체 내외부 스트레스로 인해 장내 유용 미생물 군집의 밀도가 매우 낮아져 결국 꿀벌 생존율이 감소하게 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의하면 사양꿀 생산량은 2017년 3876톤에서 2018톤 4290톤, 2019년 5858톤, 2020년 6277톤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벌꿀등급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천연꿀과 사양꿀의 엄격한 구분이 필요하며 천연꿀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농협 관계자는 “다른 축종에서 시행하고 있는 등급제와 달리 벌꿀등급제는 소비자들이 일반 벌꿀과 등급판정을 받은 벌꿀의 차이점을 인지하기 어려워 천연꿀에 대한 수요가 적다”며 “앞으로 벌꿀등급제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소비자 홍보와 더불어 생산자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국산 꿀 경쟁력 확보 위한 벌꿀등급제 정착 필요
최근 베트남 수입벌꿀에서 마트린 성분이 검출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2021년 중국산 벌꿀에서 마트린 성분이 발견돼 2021년 유럽으로의 수출이 중지된 사례가 있는데 최근 베트남산 수입벌꿀에서 이 같은 성분이 발견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중국산 천연꿀 수입량이 크게 줄고 베트남산 벌꿀 수입량이 크게 증가했는데 베트남산 벌꿀의 화분 검사결과 베트남산에서 사용된 ‘아카시아 파크난타’가 아닌 중국산 꿀에서 검출되는 ‘로비니아 슈도아카시아’인 것으로 확인됐다.
마트린은 천연 농약의 주요 성분으로 알칼로이드 계열의 화합물이며 담배에 함유된 니코틴의 일종이다. 최근 연구를 통해 장복할 경우 중추신경을 과다하게 흥분시키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산 벌꿀에서는 검출되지 않으며 중국산 벌꿀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이 있다.
국내산 벌꿀과 달리 수입벌꿀에서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성분 등이 검출됨에 따라 국내 벌꿀은 안전하다는 점을 적극 알려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수입벌꿀과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벌꿀등급제를 꼽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중국산의 베트남산으로 우회 수입되는 부분에 대한 유통을 차단하고 매장에서 벌꿀 품질관리와 판매준칙 준수를 통한 품질관리가 중요하다”며 “수입산 벌꿀의 국내 시장 유통을 줄이고 수입벌꿀의 낮은 가격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을 약화하기 위해서는 벌꿀등급제가 확산돼 소비자들이 안전한 천연 꿀을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부족한 인프라, 정부의 지원 필요
현장에서는 벌꿀등급제 시행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벌꿀등급제는 국산 천연꿀(아까시꿀, 밤꿀, 야생화꿀)이 주요 대상이다. 벌꿀 생산 농가 또는 소분 업체가 등급판정을 의뢰하면 1차로 양봉협회와 양봉농협에서 검사장비를 통해 수분, 천연꿀 여부 등 규격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1차에 합격한 꿀에 대해 2차로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품질 평가를 통해 1+, 1, 2 등 3가지 규격으로 분리해 등급을 각각 판정하게 된다.
벌꿀등급제는 등급판정을 통해 국산 벌꿀과 수입 벌꿀의 차별화를 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탕수수, 사탕무 유래 사양꿀이 천연꿀로 둔갑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국산 벌꿀의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문제는 양봉협회와 양봉농협이 천연꿀 여부 등 규격 검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검사장비 부족과 함께 인력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두 단체가 현재 보유한 벌꿀검사 장비 시스템으로는 한 해 2만여 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해에 생산되는 천연꿀 생산량이 3만 톤이라고 가정할 때 대략 드럼으로 환산하면 10만 드럼 이상으로 전체 생산량의 20% 수준밖에 등급제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채밀과 등급판정 등 일련의 과정들이 5~6월로 집중돼 소분 작업을 시행하고 있는 지정 업체 수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벌꿀등급제의 조기 정착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등급제에 따른 검사장비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선뜻 협회와 농협이 전면에 나서기엔 큰 부담”이라며 “정부가 축평원을 통해 시행 10개월을 평가하고 벌꿀등급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