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부는 벌마늘과 양파 생육장해, 일조량 부족, 벼멸구 발생 등 이상기후에 따른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했다. 이처럼 일상화된 기후변화로 농업재해의 강도와 빈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재해복구비 지원 수준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논밭을 갈아엎고 다시 파종하는 데 지원하는 대파대의 실질적인 농가 보전율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에 따라 정부는 자연재난 발생 때 재난 복구사업 및 이재민 구호를 위한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 농경지·농작물·농림시설 복구 등을 지원하는 농업재해복구비도 여기에 포함된다. 농작물을 대상으로 한 재해복구비로는 대파대(종자대·비료대)와 농약대를 지원한다.
농업계는 응급 복구나 일시적인 생계 구호에 초점을 맞춘 재해복구비로는 망쳐버린 한해 농사를 보전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특히 실제 복구비용에 못 미치는 대파대·농약대 지원 수준과 대파대 보조율 등이 줄곧 도마에 올랐다. 정부가 100% 지원하는 농약대와 달리 대파대 부담률은 정부 보조 50%, 융자 30%, 농가 자부담 20%다.
‘재해복구비 현실화’는 윤석열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이에 발맞춰 농림축산식품부는 3월 ‘2024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농업재해 복구 지원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여름 농업분야의 집중호우 피해가 커지면서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농작물 대파대, 가축 입식비 보조율 50%를 100%로 상향 ▲주요 피해 농작물 대파대 지원단가를 실거래가 수준으로 인상 ▲농기계와 온실·축사 시설·장비 피해 신규 보전 등을 제도화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결국 8월 내놓은 제도 개선방안에서 대파대와 가축 입식비 보조율 상향 내용은 빠졌다. 농업재해복구비를 지원하는 214개 항목 가운데 123개의 지원단가를 평균 23% 인상했으나 전체 복구비 현실화율(실거래가 대비 복구비 지원단가 비율)은 지난해 60.1%에서 올해 62.4%로 오르는 데 그쳤다.
그중 대파대는 지원 품목 43개 가운데 27개의 지원단가를 인상하면서 현실화율이 67.6%에서 74.8%로 증가했지만, 지원단가가 실거래가의 절반에 불과한 품목이 많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곡물류 등의 대파대 현실화율은 100%에 달하는 반면 과수·인삼은 50% 수준에 그친다.
대파대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농가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이다. 농작물재해보험은 가입 품목 제한과 피해 산정 방식, 보상 기준과 관련된 논란 등으로 지난해 기준 가입률이 52.1%에 그친다.
국립강릉원주대학교가 최근 농식품부에 제출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해대응체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농작물의 생산비(원가) 대비 대파대 수준은 평균 17.4% 정도로, 대파대 현실화율을 67.6%에서 100%로 올린다고 가정해도 생산비 대비 26% 수준에 불과했다. 정부가 대파대의 절반만 보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농가의 보전율은 약 13%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이는 미국의 ‘비보험작물재해지원 프로그램(NAP)’의 기초보장 보전율 27.5%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정부가 대파대 등 농업재해 복구 지원 제도를 확대할 경우 농작물재해보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는 점도 반박했다. 농작물재해보험금은 일부 기초 항목을 기준으로 산정된 대파대에 비해 지급금이 훨씬 큰 만큼 대파대 현실화율과 보조율을 인상해도 기존 보험제도의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회에는 재해복구비 현실화와 생산비를 고려한 지원을 추진하는 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돼 있다. 하지만 재정당국 등은 재정 부담이 늘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예산문제로 이번에 대파대 보조율 상향이 어려웠고, 과수 등 대파대 지원단가가 높은 품목의 현실화율 향상도 더딘 실정”이라며 “앞으로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대파대 현실화율을 점차 늘릴 계획이며 보조율 상향에 대해서도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