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손민정·최영진 기자]
대한민국이 빠르게 늙고 있다.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지난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30년에는 국민 4명 중 1명이 노인이라는 ‘회색빛’ 전망도 제기된다. 심화하는 고령화에 의료와 돌봄 체계 구축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농어촌의 현실은 암담하다. 공중보건의 감소 등으로 지역에 의사가 단 한 명도 없는 ‘무의촌’은 늘고 있고, 간단한 검진조차 도시로 향하는 ‘원정진료’도 일상이다. 늙어가는 농어촌에 가능한 의료·돌봄 체계를 구축할 해법은 없을까. 본보가 ‘농어촌 건강, 지금이 골든타임’을 기획한 이유다. 전국 각지의 의료·돌봄 현장을 살펴보고, 우수 사례 확산과 함께 대안을 모색한다.
초고령사회 진입 농어촌 의료·돌봄체계 구축은 감감 의사 없는 ‘무의촌’ 늘고 간단한 검진조차 쉽지 않아 #의사가 없다···일차의료취약지 74% ‘무의촌’ 신규 공보의 814→98명으로 급감…보건지소 1023곳 ‘의사 공백’

현역병 대비 2배 긴 복무기간 의료 사태 더해져 공보의 급감 2017년 2116→올해 593명 ‘뚝’
강원도 평창군의 전체 면적은 서울의 약 2.4배에 달하는 1464k㎡. 약 4만명이 거주하는 이곳의 고령 인구비율은 올해 37.4%에 이른다. 그러나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24시간 진료를 하는 곳은 ‘평창군보건의료원’, 단 한 곳뿐이다.
평창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자원의 수도권 집중과 인구 감소·고령화, 희박한 인구밀도가 맞물리면서 농어촌 의료 공백은 보편적 현실로 자리 잡았다. 올해 보건복지부가 읍·면 단위 민간 의료기관 접근성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국 547개 지역이 ‘일차의료취약지’로 선정됐다. 일차의료취약지는 관내 및 인접 읍·면 4km 이내에 약국을 포함한 민간 의료기관이 전무한 지역을 뜻한다.
이 같은 ‘무의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1980년대 후반부터 보건소·지소·진료소 체계를 확립하고 공중보건의사 제도를 구축해 왔다. 공보의들이 민간 의료기관이 없는 농어촌의 의료 사각지대를 채우겠다는 취지다. 공보의들은 3년간 도서·산간 등 의료 취약지에 복무하며 지역의료의 보루 역할을 했다.
하지만 공중보건의 체계는 숫자로 보면 사실상 붕괴 단계다. 2017년만 해도 814명이었던 신규 공보의는 현역병 대비 2배 긴 복무기간에다, 2024~2025년 의료 사태가 더해지며 올해 98명으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복무인원도 2116명에서 593명으로 수직하강하면서 공보의 없는 읍면 단위 보건지소는 급증했다.
지난해 59.5%(730개)였던 공보의 미배치 보건지소 비율은 올해 82.1%(1023개)로 치솟았고, 내년은 86.9%(1083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는 이에 대응코자 일차의료취약지에 공보의를 우선 배치한다는 계획이지만 인력 부족으로 532개소 중 139개소에만 이뤄져 나머지 73.9%는 의사 없는 지역으로 남게 된다.
섬 지역은 더욱 참담하다. 공중보건의 체계 자체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데다, 악천후에는 꼼짝없이 섬 외 진료도 포기해야 하는 실정이다. 연륙도와 공중보건의가 없는 유인섬(거주자)은 지난해 기준 280여개(5만여명)에 달한다. 섬 주민의 의료 공백을 해소하고자 내과·치과·한의과, 건강관리 등을 제공하는 ‘병원선’이 지자체 주도로 운영되고 있지만, 전남도는 2척, 충남·경남·인천은 지역별로 각각 1척에 불과하다.
#예산, 시설도 태부족···‘통합돌봄’도 격차
지역의사선발전형 정착 전까지 공백 메울 지역필수·시니어의사 의료시설·예산 부족 한계 뚜렷 ‘재택의료센터’ 양의 없는 곳도
정부는 지역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2031년까지 2942명을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선발하고, 2030년 국립의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해 지역의료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그전까지는 지역필수의사제와 시니어의사 사업 등으로 지역의 의료인력 수당을 지원해 공백을 메꾼다는 계획이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는 지역 내 의료기관에서 필수과목을 진료하는 전문의에게 지역근무수당과 정주 여건을 지원하는 제도다. ‘시니어의사 사업’은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는 60세 이상 의사의 임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몇몇 지원사업으로 공백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우선 사업을 수행할 의료 인력 확보가 어려운 것이 문제로 꼽힌다. 올 7월 8일 발간된 국회예산정책처의 ‘지역의료 지원사업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로 지역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채용되는 경우는 지난해 90명에서 올해 88명으로 감소했다. 보건의료원과 보건소의 시니어의사 채용인원 역시 지난해 15명에서 올해 12명으로 줄었다. 신규 인원이 채용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은 “일단 인력 확보가 어려우니 사업 대상자를 찾기도 어렵고, 비용 지원도 한계가 있다”며 “봉직의 약 8명을 채용하기 위해 임금만 연간 30억원이 드는데, 시니어의사 제도로 5억원을 국비로 지원받더라도 25억원을 지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행할 의료기관도 부족하다. 복지부는 소아청소년과 및 인공신장실 등 필수 보건의료서비스의 공급이 부족한 지역을 ‘의료취약지’로 지정하고, 분만 의료기관까지 접근성 및 의료 이용이 취약한 지역을 ‘분만취약지’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올해 기준 의료취약지는 33개, 분만취약지는 108개 지역이 지정됐다.
그러나 지역에 의료기관이 존재하지 않아 의료취약지의 87.8%(29개 지역), 분만취약지의 45.3%(49개 지역)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복지부는 “미지원 지역의 경우 사업수행기관으로 신청할 수 있는 적정 의료기관이 존재하지 않아 사업 공모에 참여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의료자원이 부족한 농어촌의 현실은 ‘통합돌봄 서비스’에서도 도농 간 격차를 심화시킨다. 통합돌봄은 돌봄이 필요한 노인·장애인 등이 살던 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방문의료, 건강관리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그중 방문의료의 경우 전국 의료기관 가운데 방문진료가 가능한 곳을 지역별로 선정해 ‘재택의료센터’를 지정, 운영한다.
하지만 방문진료를 수행할 의료기관이 충분치 않아 소수의 재택의료센터가 넓은 권역을 맡거나, 내과·외과 등 양방 의원 없이 한방 의원만 지정돼있는 지역도 적잖다. 현재 전국 229개 시군구 중 23개 지역이 한의원 재택의료만 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전체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주민조직화로 지역 의료 뒷받침해야” 지역 개원의 공공보건 참여 유도…주민 주도 ‘돌봄조직’ 키워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마을의원을 만들어 지역의료를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사진은 2024년 5월 개원한 양평의료사협 모두의원.
개원의 보건소 진료 가능하지만 예산 부족 탓 지자체 도입 더뎌 국비 지원 확대·비율 명문화 필요
주민 주도 ‘돌봄공동체’ 활성화 의료사협 기반 ‘마을 의원’ 육성 1차 의료 거점으로 자리잡아야
전문가들은 농어촌 특성을 감안한 의료 체계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시설·의료 인력을 단기간 내 농어촌에 투입하기 어려운 만큼, 공공보건체계에 인근 지역의 개원의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8년 전 공공의료에 뛰어든 김상경 청양군보건의료원장은 “인맥을 총동원해서 도시보다 급여를 10~20% 준다고 해도, 삶의 질·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지역에서 활동할 의료진을 확보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며 “지역의사선발전형 등도 좋지만 의사를 지역에 앉히는 것보다, 인근 지역의 개원의가 의료 낙후지로 봉사활동 겸 방문하고 보수도 거둬가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법적으로 개원의의 보건소·보건지소·보건의료원 진료가 5월 13일부로 가능해졌지만 예산 부족으로 잘 이뤄지는 곳은 많지 않다”며 “지자체 예산으로 공중보건의의 임금을 지급하는 현 체계는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지역 의료 여건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 법적으로 예산 지원 비율을 명문화 하거나 국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이 돌봄공동체를 조직하거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조직해 마을의원을 만들어 지역의료와 돌봄 사업을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적합한 기관이 없다면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이 주체가 돼 지역 실정에 맞는 조직을 자발적으로 꾸릴 수 있단 것이다.
실제로 경남산청의료사협 화목한의원, 안성의료사협 안성농민의원 등 의료사협이 만든 의원에서 재택의료센터 지정을 받고 방문의료 사업을 수행하는 지역이 존재한다. 의료사협의 마을의원은 주민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통해 설립해 마을 실정에 맞게 운영이 가능하고, 접근성이 좋아 지역 1차의료의 거점으로 자리 잡기 쉽다는 설명이다.
금창영 홍성의료사협 이사장은 “주민들은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의원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며 “의료 인력을 확보하는 문제를 넘어 의료진이 주민과 관계를 형성해 건강을 파악하고, 지역 실정에 맞춰 운영돼야 지역의료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돌봄공동체 역시 주민 건강관리와 지원 대상자 발굴 등을 담당할 수 있다. 충남 홍성의 함께하는장곡사회적협동조합이나, 전북 진안의 백운통합돌봄사회적협동조합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마을에서 직접 건강 증진과 노인 돌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의료가 필요한 마을주민들을 발굴해 인근 기관과 연계, 관리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돌봄농장과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를 지원해 농촌형 돌봄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다만 전국 1400개 읍면 가운데 농촌돌봄농장은 101개소, 돌봄공동체는 66개에 불과하다. 김기흥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수산식품팀 사무관은 “지원이 있다면 이전에 공동체 활동을 하지 않던 마을도 충분히 공동체를 조직할 수 있다”며 “농촌 생활돌봄공동체 전담 광역센터를 설립해 공동체 육성부터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민정·최영진 기자 sonmj@agrine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