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수급조절용 벼’가 올해부터 전략작물직불금 대상에 포함되며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다. 사전격리를 통한 수급 조절 목적 외에도 농가소득 안정과 쌀 가공산업 활성화라는 복합적인 효과가 기대되지만, 지난해 수확기 쌀값이 평년보다 높게 형성되면서 농가 참여가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제도 안착과 향후 정책 확대를 위한 현장 제언도 잇따르고 있다.
올해 운영 규모 2만~3만ha 수도작 환경 훼손·추가 비용 없이 ‘ha당 1121만원’ 안정적인 소득 가공업체 품질 개선 효과도 기대
▲수급·소득·가공, ‘세 마리 토끼’ 기대 효과=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수급조절용 벼’ 사업은 이달부터 5월까지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 신청과 미곡종합처리장(RPC) 출하 계약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논에서 벼를 기존대로 재배하되, 생산 단계부터 가공용으로 용도를 제한해 저렴하게 출하하는 대신에 일반 밥쌀 수입과의 가격 차이 일부를 보전해 주는 방식이다.
참여 농가는 계약을 맺은 RPC에 가공용 쌀을 출하하고, RPC로부터 출하대금(1200원/kg, 정곡 기준)과 함께 지자체로부터 전략작물직불금(500만원/ha)을 받는다. RPC는 수급조절용 벼를 보관한 뒤 쌀가공업체에 공급하고, 동일한 단가의 판매대금(1200원/kg)을 받는 구조다. 
수급조절용 벼는 평상시에는 가공용으로 제한해 밥쌀 시장에서 사전 격리하고, 공급부족 등 비상시에는 신속하게 밥쌀로 전환해 수급 안정 기능을 수행한다. 올해 운영 규모는 2만~3만ha로, 쌀 생산량으로는 약 10만~15만톤에 해당된다. 일본 역시 생산 단계부터 용도를 제한해 관리하는 가공용 쌀 지원제도를 운영 중이다. 농업인이 지정된 면적에서 생산된 가공용 쌀을 전량 수요업체에 공급할 경우 면적 기반 직불금(2만엔/10a)을 지급 받는다.
농가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콩이나 가루쌀 등 타작물 재배에 필요한 기반 정비나 장비 투자 등 추가 비용이 없고, 타작물 생산 과잉에 따른 부작용 우려도 적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수도작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정부의 수급안정 대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사료용 벼와 총체 벼와 달리 적정 단가를 고려했고, 가공용 수요와 비상시 밥쌀 전환 가능성까지 감안했으며 안정적인 판로 확보를 통해 농가 경영 위험 분산을 꾀했다는 점에서 정책 방향성이 비교적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농가 소득 측면에서도 안정성이 있다. 평균 생산 단수(518㎏/10a)를 기준으로 할 경우 직불금과 가공용 쌀 출하대금을 합해 ha당 1121만원의 수입을 쌀값 등락에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이는 평년 밥쌀 일반재배 수입보다 약 65만원 높은 수준이며, 단수가 높을수록 소득도 늘어난다.
쌀 가공업체 역시 정부관리양곡(구곡) 대신 민간 신곡을 원료곡으로 사용할 수 있어 품질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조상현 쌀가공식품협회 사업운영본부장은 “민간 신곡 사용을 통해 제품 품질 향상이 기대된다. 포장지 교체 등 마케팅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재정 절감 효과도 있다. 민간 신곡을 활용하는 방식이어서 시장격리나 공공비축에 따른 정부 보관·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1만톤 기준 예산 소요액은 수급조절용 벼가 113억원으로, 시장격리(305억원) 대비 약 1/3수준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수확기 쌀값 평년비 높아 농가 참여 유인 낮아질 가능성 시세 반영 단가 조정·중장기 인상 정책 지속가능성 담보 목소리도
▲제도 안착과 정책 확대를 위해선=관건은 농가 참여다. 2020~2024년 여건을 반영한 제도 설계로 인해 지난해 평년보다 높은 수확기 쌀값을 경험한 농가 입장에서 참여 유인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쌀값 시세를 반영한 유연한 단가 조정이나 중장기 차원의 직불단가 인상 필요성이 제기된다.
임병희 사무총장은 “단기적인 쌀값 변동이 아니라 평년 기준으로 판단하되 중장기적으로 단가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며 “생산 단수 역시 지역별 편차가 있는 만큼 필지에서 생산된 물량은 전량 수매하고, 최소 기준 미달 시 패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이 참여 확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전했다.
정책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몇 년간 가루쌀, 콩 등 타작물 재배 정책이 잦은 방향 전환을 겪으며 정부 정책에 반신반의하는 현장 분위기가 있어서다.
천안에서 벼농사를 짓는 송태성 한국후계농업경영인충남도연합회장은 “타작물 재배를 독려하다가 다시 규모 축소를 요구하는 등 정책이 번복되면서 신뢰를 잃고 있다”며 “수급조절용 벼 역시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말고 중장기 추진계획을 명확히 제시해야 농가 참여와 관심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업인 대상 홍보 강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수도작 농가인 홍영신 한농연전남도연합회장은 “새로운 정책인 만큼 세부 내용을 모르거나 관심이 낮은 농가가 많다”며 “농사 계획을 세우는 농한기에 맞춰 집중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 회장도 “쌀값 상승으로 재배의향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선제적인 홍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