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관태 기자]
영농폐기물 수거처리반이 농촌에 쌓여 있는 영농폐비닐을 수거하는 모습. 사진=농림축산식품부농촌에 방치된 영농폐기물과 생활쓰레기는 농촌 경관 훼손을 넘어 토양과 수질 오염, 산불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농촌 쓰레기 문제는 흔히 불법소각과 같은 ‘버리는 습관’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지만, 실상은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전문가들은 대량 생산체제로의 농업 구조 변화, 미흡한 수거 인프라,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 등이 문제의 근본에 자리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행정에선 농촌 쓰레기 문제를 농민 개인의 인식 부족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농촌 쓰레기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에 본보는 ‘농촌 쓰레기 문제를 진단한다’ 기획의 첫 번째 편으로, 농촌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현황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들여다 봤다.
쌓여가는 농촌 쓰레기···영농폐비닐 발생량 감소 불구 통계상 9만톤 여전히 방치
“옛날에 비하면 폐기물이 많이 나오는 편이죠. 보온덮개며 관수호스, 스티로폼까지 여러 가지가 나오니까요. 폐기장 가서도 분리가 잘 안됐다며 옥신각신 하기도 합니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 지정2리 유명주 이장은 마을 공동집하장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장곡면 주민들은 2021년 주민자치 사업으로 영농폐기물 수거 사업을 진행해 이듬해 전국주민자치 박람회에서 행안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농 활동이 다양해지고 농촌 주민들의 소비도 도시와 다를 바 없이 변하면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쓰레기는 농촌의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의 최근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 해 동안 전국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양은 1억7600만톤. 이중 영농폐비닐 발생량은 29만17톤, 폐농약용기 발생량은 7382만2258개로 집계됐다. 영농폐비닐 발생량은 2022년도 발생량보다 7.8%(2만4490톤) 감소했는데,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비닐 사용주기가 길어지고, 농작물 재배면적도 줄어든 것”을 요인으로 보고 있다. 영농폐비닐 수거량은 20만903톤으로 나타났는데, 통계상 약 9만톤의 영농폐비닐이 수거되지 않고 농촌에 남아 있는 것이다.
차광망·보온덮개 등 공공수거 안돼···일반쓰레기 분류되지만 봉투에 담기 버거워
홍성군 장곡면의 한 공동집하장. 생활쓰레기와 재활용쓰레기가 뒤섞여 있다. 더 큰 문제는 공공 수거 체계에 포함되지 않는 영농폐기물이다. 현재 영농폐비닐과 폐농약용기는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수거사업소를 통해 처리되고 있지만, 차광망이나 보온덮개, 농업용 호스 같은 건 생활쓰레기로 분류돼 일반쓰레기 봉투에 담아 배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폐기물은 대부분 부피가 크고 형태가 불규칙해 봉투에 나눠 담기도 어렵고, 처리 과정에서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또한 농촌에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의 경우 발생량이 정확히 파악되진 않지만, 집 앞까지 쓰레기 수거차가 오지 않는데다,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마을 공동집하장이 멀리 떨어져 있고 수거 주기도 길어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농촌을 방문한 외지인들이 투기하는 쓰레기도 농촌 주민들에겐 큰 문제다. 강이나 계곡과 같은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쓰레기가 쌓이기 마련이다. 홍성의 홍동저수지의 경우 낚시꾼들이 함부로 버리고 간 쓰레기로 몸살을 앓다 결국 주민들이 저수지 진출입로를 통제하는 문을 설치하기도 했다.
‘초록열매 농촌쓰레기 컬렉티브’를 진행하고 있는 (재)숲과나무 장재연 이사장은 “농촌 쓰레기는 한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점오염원이 아닌 넓은 면적에서 불특정하게 나오는 면오염원으로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며 “행정에서 폐기물 수거실적 등을 제시하긴 하지만 숫자로 나타날 뿐 실제 농촌 쓰레기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잘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병충해 방지 등 이유로 무단 투기·불법 소각도···환경오염·산불 발생 ‘안전 위협’
홍성군 홍동저수지 진출입로. 낚시꾼들이 버리고간 쓰레기로 몸살을 앓자 출입을 통제하는 문을 설치했다.이렇게 농촌에 버려진 쓰레기는 농촌 환경에 지속적인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단 투기와 불법 소각으로 인해 환경오염이 증가하고, 산불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어 문제가 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0년 발간한 ‘농촌지역 영농 부산물 및 폐기물 소각에 대한 실태조사’를 보면 조사대상 농업인 중 영농부산물을 소각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77.8%, 영농폐기물은 21.4%, 생활쓰레기는 78.3%로 나타났다. 이들은 소각이 불법이란 의식이 있지만 쓰레기를 처리하기가 힘들고 병충해 방지 등을 이유로 소각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논·밭두렁 태우기 및 영농부산물 소각으로 인한 산불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현재 산림 인접 지역(산림으로부터 100m 이내)에서는 소각행위가 전면 금지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범부처 협업을 통해 전국 138개 시군 139개소에서 겨울철과 봄철에 영농부산물 파쇄지원단을 집중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적에서 발생하는 영농부산물의 규모와 처리 수요를 고려할 때, 현재의 지원체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보다 확대된 대응이 필요한 실정이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서 마을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 중인 김인호 삼삼은구 대표는 “마을에 사시는 한 분이 강가 옆에 영농폐기물을 그냥 쌓아 놓은 적이 있었는데 얘길 들어보니 태우지도 못하고 2~3일 동안 고민만하다가 내놨다고 말하더라”면서 “산불 감시가 강화되면서 태우기도 어렵고 농사를 시작해야 하니 영농폐기물은 치워야 할 것 같아 할 수 없이 강가에 내뒀다는데 농촌에서 영농폐기물을 적절히 처리할 방법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가 농촌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분리배출을 한다고 해도 열악한 수거 체계로 인해 농촌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사례도 있다. 홍성군 장곡면 상송리 곽현정 이장은 “마을 일꾼들과 함께 농약병을 분리해 업체에 가져다주고 있는데 농약병을 싣고 간 차에서 계속 농약 냄새가 나고 농약 중독 증세 같은 걸 느낀 날도 있었다”며 “게다가 업체에서는 10kg 이상부터 수거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농약병 같은 건 전문 수거업체에서 수거해 가는 체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영농폐기물 조례 있지만 실질적 도움 안돼···농촌 폐기물 통합적 관리 시급
홍성군 장곡면 상송리의 분리수거장. 마을주민이 합심해 분리수거를 하고 있지만 수거 체계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다.농촌에서 발생하는 영농폐기물이나 영농부산물을 관리하기 위한 지자체 조례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치법규정보시스템에서 ‘영농폐기물’과 ‘영농부산물’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각각 133건과 37건의 조례가 등록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례는 농촌의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시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거나, 효율적인 수거·처리를 위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수준의 규정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김인호 대표는 “홍천군에서도 관련 조례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마을에서 직접적으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은 없고, 군에서도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다는 말만 들었다”며 “다른 지자체의 조례를 그대로 참고해 만들다 보니,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지난 9월 ‘영농부산물 안전처리 지원 조례’에 관한 분석 보고서를 통해 “영농부산물 관리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접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파쇄 및 수거 지원, 장비 임대 등 실질적 지원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고령화가 심화된 농촌의 현실을 고려할 때, 고령 및 취약 농가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지원 체계 구축과 농한기를 활용한 집중 사업 시행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는 “영농부산물, 생활쓰레기, 영농폐기물이 각각 개별적으로 관리되는 분절적 정책 구조를 벗어나, 분리배출부터 수거, 자원화, 교육·홍보까지 농촌 폐기물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관태 기자 kimkt@agri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