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용 품목 위험관리 한계 주먹구구식 손해사정도 문제 전체 농작물 ‘기본형 보장’ 도입 선택형 특약으로 보완 목소리
최근 집중호우로 익산의 한 채소 농가 비닐하우스 5동이 모두 침수됐다. 농장주 김훈 씨(한농연익산시연합회 품목분과위원장·익산시귀농귀촌협의회장)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했지만,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할 처지다. 보험 대상품목이 배추·상추에만 한정돼 있는 탓이다. 얼갈이배추·쌈배추 등은 아직까지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케일·겨자·근대 등 스무 가지가 넘는 쌈채소 류도 마찬가지다.
김 씨는 “작물에 따라 재해보험 적용 여부가 달라지는 현실은 불합리하다”며 “보장금액이 다소 낮더라도 최소한 비슷한 작목을 기준으로 보험 적용이 가능해진다면 가입률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민들이 원하는 것은 재해 발생 시 품목에 상관없이 최소한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안전망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전주시 중인동에서는 주먹구구식 피해조사가 문제가 됐다. 최근 침수 피해를 입은 유춘배 씨는 "시청과 농협에 민원을 넣었지만, ‘미나리는 원래 물에서 키우니 괜찮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번 피해는 단순한 물잠김이 아니었다. 미나리 전체가 침수돼 잎이 마르고 갈변하는 등 피해가 컸으며, 물이 빠진 뒤 고온과 강한 햇볕으로 잎이 타버려 상품성을 잃었다.
문제는 이런 대응이 현장 손해사정사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이다. 유 씨는 “미나리는 재해보험 품목인데도 피해 정도를 정확히 판단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현장 대응 기준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농작물재해보험 대상품목은 76개다. 정부는 올해 녹두·생강·참깨를 신규 편입했고, 과수 4종(사과·배·단감·떫은감)에 대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자연재해를 보장하는 시범상품을 일부지역에서 도입하는 한편, 보험료율 세분화와 방재시설 설치시 할인 확대 등 인센티브도 강화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이종면 한농연전북연합회 정책부회장은 “지금처럼 품목 단위로 쪼개진 구조로는 기후위기 시대 농가의 위험 관리가 어렵다”며 “정부가 농업재해보험을 실질적인 농가 경영안전망으로 설계하려면 전체 농작물에 대한 기본형 보장을 도입하고, 선택형 특약으로 세부 보장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도 농업정책 관계자는 “현장을 다니며 농민들의 민원을 직접 듣다 보면, 재해보험 제도가 농민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며 “피해를 입어도 품목 제한이나 기준 문제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농민들이 기후위기 속에서 안심하고 농사짓고 실질적인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계속 보완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 재해보험과 관계자는 “품목별이 아닌 농작물 자체의 기본형 보장에 대한 현장 수요가 있다는 부분을 알고 있다”며 “품목 확대를 통해 재해보험의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품목별 보험화를 위한 최소 요건은 공시 가격과 수확량 데이터를 갖추는 부분으로, 2년마다 지자체 현장 수요를 통해 품목별 보험화 가능성을 평가한 후 보험 적용 품목을 확대하고 있다”면서 “2026년 시설깻잎과 오이에 이어 2027년에는 체리와 들깨 품목을 추가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