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5년차를 맞는 내년에 민감 품목인 참깨의 관세가 철폐된다. 미국산 참깨 수입량 급증이 예상되는 가운데 올해 한국에 들어온 미국산 참깨에서 국내 농약 잔류허용기준(MRL)을 크게 초과한 제초제 성분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2026년 관세 철폐…수입 급증 전망=미국산 참깨는 한국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던 품목이다. 실제 2015∼2023년 9년간 미국산 참깨 수입량은 통틀어 48.1t에 불과했다. 그러다 지난해 수입량이 200.8t으로 늘었고, 올해는 1∼5월에만 1460.8t이 수입되며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1만4753.4t)·인도(4648t)·부르키나파소(1800t)에 이은 네번째 규모다.
미국산 참깨는 한·미 FTA가 발효된 2012년부터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되다 15년차인 2026년 무관세로 전환된다. FTA 체결 이전 630%를 적용받던 관세가 올해 42%까지 낮아진 상태다. 수입가격은 1㎏당 평균 1.8달러로 추정된다. 42%의 관세를 적용하더라도 중국산(2.4달러)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수입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미국산 참깨는 ‘농업 긴급수입제한조치’ 적용 품목으로, 2029년까지 세이프가드(ASG)가 설정된 상태다. 올해 ASG 쿼터는 6867t으로 쿼터 내 물량에만 42%의 관세가 적용된다. ASG 쿼터는 2026∼2029년 7121t으로 유지되다 2030년 폐지돼 국내 농가 보호막이 완전히 걷힌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참깨 수출량은 2018년 2만2316.8t에서 2023년 3만2452.9t으로 증가 추세다. 앞으로 한국으로의 수출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수년간 진행된 글리포세이트 유해성 논란=본지가 최근 한 전문 분석기관에 미국산 참깨에 대한 글리포세이트 잔류농약검사를 의뢰한 결과 국내 허용기준(0.05㎎/㎏)의 19배에 달하는 수치(0.934㎎/㎏)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글리포세이트를 ‘인체 발암 가능성이 높은(2A군)’ 물질로 분류하면서 안전성 논란을 촉발시켰다. 당시 IARC는 약 1000건의 연구를 검토한 뒤, 실제 노출을 통해 얻은 인체 발암 증거와 실험동물 발암 증거에 근거해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2020년 글리포세이트를 라벨(기준 용법)에 맞게 사용할 경우 인체 건강에 우려되는 위험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발암 물질일 가능성도 낮다고 판단했다.
임무혁 대구대학교 식품공학과 교수는 “글리포세이트는 사람이 섭취하는 아미노산과 구조가 유사하고, 독성이 낮아 전문가들은 안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농촌진흥청이 고시한 글리포세이트에 대한 일일섭취허용량(ADI)은 0.8㎎/㎏이다. 체중 60㎏인 성인이 하루 48㎎까지 섭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안전성 논란은 올들어 미국에서 다시 불타오르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설립한 ‘MAHA(Make America Healthy Again·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위원회’가 5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글리포세이트 등 미국 농업계에서 사용되는 작물보호제가 미국 유아들의 건강문제와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강상욱 상명대학교 화학에너지공학전공 교수는 “미국산 참깨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된 것은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글리포세이트’ 미국 농업 지탱하는 주요 수단…참깨 사용 가능성 커=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2019년 발표한 ‘연간 농약 사용량 추정치’에 따르면 미국 자치주(카운티)에서는 1제곱마일(2.59㎢)당 평균 59㎏의 글리포세이트가 살포된 것으로 조사됐다. 글리포세이트를 다른 제초제로 대체하면 미국 생산자들은 최소 60%의 생산비 증가에 직면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글리포세이트가 이처럼 미국 농업의 생산성을 지탱하는 핵심 수단인 만큼 참깨 재배에도 관행적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참깨 수확을 위해 글리포세이트를 건조제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작물이 충분히 건조되지 않으면 기계 수확이 어려운 만큼 참깨 재배의 마지막 단계 때 글리포세이트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조성필 한국작물보호협회 상무는 “기계 수확 때 작물의 줄기가 완전히 건조되지 않으면 말려 올라갈 수 있어 미국과 같이 재배규모가 큰 국가에선 일부 농약을 건조제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다만 글리포세이트가 건조제로 사용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전문가 “미국산 참깨 조사 필요”=전문가들은 미국산 참깨에서 국내 기준치를 초과한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된 만큼 미국 내 재배 현황 조사와 잔류농약검사 시행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는 “일부 샘플에서 허용기준을 초과한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된 이상 정부에서도 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며 “농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 조속히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우, 사진=이종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