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설하우스에서 농가와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함께 수확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농민신문DB불법 브로커가 계절근로자 제도를 좀먹고 있다. 계절근로제는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촌에 꼭 필요한 제도지만 브로커들이 관리 사각지대에서 임금 착취 등 인권 유린 행태를 자행하면서 농가와 근로자가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제도에 대한 부정적 여론마저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달 A지방자치단체에서 한 계절근로자가 동료 계절근로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자체에 따르면 사건은 현재 경찰 수사 중으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취재 결과 이번 사건은 브로커가 만든 제도의 빈틈에서 발생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 지역에선 계절근로자 상당수가 브로커 B씨를 거쳐 들어온다. 농가를 대신해 계절근로자를 신청하고 관련 서류 작업을 대행해준 뒤 이후 지자체가 근로자를 선발해 들여오면 B씨는 이들로부터 관리비 등 명목으로 과도한 수수료 수익을 챙기는 것으로 파악된다.
더욱이 B씨는 계절근로자를 농가가 신청한 대로 배치하지 않고 직접 관리하면서 일손이 필요한 농가에 그때그때 파견하는 식으로 인력중개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장소도 지역 인력 소개업체의 숙소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 정황을 잘 아는 한 인물은 “B씨가 인력을 너무 많이 운용하면서 놀리는 이들이 많아지자 인근 인력 소개업체에 맡겼다가 사달이 났다”며 “계절근로자들이 농가와 지자체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있던 셈”이라고 했다.
법무부 지침에 따르면, 사인 또는 단체가 근로자 모집·송출 등을 위임받아 수행하면서 유·무형의 대가를 주고받는 행위는 ‘중대 위반사항’이다. 하지만 상당수 지역에서 브로커가 활동하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다. 강원 양구에선 브로커문제로 필리핀 계절근로자 입국에 차질이 빚어졌다. 양구군농민회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양구지역 브로커가 필리핀 팡길·파에테시 근로자의 모집·이동·관리에 관여하면서 수수료 명목으로 임금을 착취한 점을 문제 삼아 이들 시가 한국으로 계절근로자를 송출하는 것을 막은 상태다.
브로커의 행태가 인권단체 등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며 제도의 존속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지난해말 이주인권단체가 연 기자회견에선 “고용허가제와 달리 (지자체에 업무가 내맡겨진) 계절근로자 제도는 시장에서 브로커가 활개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과 함께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좌초된 제도’ ‘인신매매 비자’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등장했다.
경남 거창처럼 전담팀을 만들고 계절근로자 지원을 위한 조례도 제정해 브로커 개입을 차단한 우수 지자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공무원의 인력과 전문성 부족 등으로 브로커에 의지하는 지자체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농가도 서류 작업 등을 브로커에 맡기길 선호한다. A지자체 관계자는 “공무원 한명이 밤낮·주말 없이 일하지만 역부족”이라고 푸념했다.
대안으로는 일찌감치 전담기관 설치가 거론됐다. ‘계절근로자 지원 전담기관 지정·운영’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낸 공약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