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 도암농협(조합장 윤재선)이 자체적으로 조성한 공공형 외국인 계절근로자 숙소가 주목받고 있다. 농협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계절근로자의 주거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재입국한 베트남 출신 계절근로자 보황풍씨(45)가 2층 침대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외국인 계절근로제 운용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인 숙소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방자치단체와 농협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자체나 농협이 보유한 유휴시설을 리모델링해 외국인 근로자 숙소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전남 강진 도암농협은 본점 맞은편에 있는 옛 경제사업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기숙사로 4월말 개소했다. 도비·군비 3억5000만원, 농협 사업비 1억8000만원이 투입됐다. 숙소는 전체 330㎡(100평) 규모로, 6인 1실 구조의 4개 호실을 갖추고 있다. 부엌, 화장실 겸 세탁실, 샤워실 등 공용 공간이 마련돼 있다.
도암농협은 지난해 처음으로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군의 도움을 받아 옛 마을회관과 농가주택을 고쳐 숙소로 썼지만 두곳으로 분산돼 있어 근로자의 이동·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숙소 마련에 나선 결과 낡은 농협시설을 활용키로 한 것이다.
김미 도암농협 팀장은 “폐교 등 다른 유휴건물 활용방안도 검토했으나 비용과 행정절차 측면에서 부담이 컸다”며 “이번 기숙사 또한 건축물 용도변경을 위한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지난해부터 군 관계자와 함께 타당성 검토 등 수차례 협의를 거쳐 수월하게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암농협의 농업근로자 숙소 전경.도암농협 기숙사에는 현재 남성 근로자만 머물고 있지만, 향후 여성 계절근로자를 위한 숙소도 마련할 계획이다.
경기 양주시와 파주시 등 지자체는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고용한 개별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유휴 부동산 활용에 나섰다.
양주시는 시도비 예산 3억2000만원을 투입해 광적면 비암2리의 농촌체험장을 새로 단장했고 올해 3월부터 외국인 계절근로자 숙소로 운영 중이다. 최대 32명의 숙식이 가능하고 냉난방 시설과 침대·주방·세탁실 등 편의시설을 갖췄다. 농가는 신청만 하면 계절근로자 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현재 라오스·베트남에서 온 11명이 이용하고 있다.
파주시는 관사(문산읍 선유리)를 수리해 숙소로 제공하고 있다. 공공형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운용하는 북파주농협이 현재 라오스인 근로자 20명의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경기 연천군은 체험객 감소로 활용도가 떨어졌던 왕징면의 농촌체험시설 ‘나룻배마을’의 일부를 리모델링해 계절근로자 숙소로 꾸렸다. 현재 연천 전곡농협 공공형 계절근로자 30명이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농협과 지자체가 나서면서 계절근로제 운용에 숨통이 트이는 모양새다. 숙소 마련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 농가 부담이 컸을 뿐 아니라 주택 소유주들이 “지저분하게 사용한다” “특유의 음식 냄새가 난다” “주위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등의 이유로 임대를 꺼리면서 숙소 마련에 어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돈을 주고도 계절근로자 숙소를 구하기 어렵다”는 하소연까지 나오는 실정이었다.
3960㎡(1200평)의 시설하우스에서 오이를 생산하는 강석진씨(45·양주시 백석면)는 “기존에 이용하던 농막·컨테이너는 법무부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지 않아 급히 일반 주택 임차를 알아봤지만 소유주들의 거절로 실패했다”면서 “시가 청소부터 관리까지 하니 편할뿐더러 외국인 근로자들도 아주 흡족해해 일도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만족도도 높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재입국해 도암농협 기숙사에 머물고 있는 베트남 출신 보황풍씨(45)는 “현재 룸메이트 한명과 방을 같이 쓰고 있는데 넓고 쾌적하다”며 “지난해 임시 숙소에서 거주할 때보다 환경이 깨끗해 만족스럽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파주시 외국인 근로자 숙소에 머무는 라오스 출신 빈딧씨(36)도 “숙소에 취사시설과 냉장고·전자레인지·전기레인지가 있어 생활하는 데 불편이 없고, 북파주농협에서 휴일에 차량까지 지원해준다”며 웃었다.
이에 중앙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윤재선 도암농협 조합장은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에 대한 농가 호응은 높지만 농협의 부담이 크고, 특히 숙소문제가 진입장벽”이라면서 “우리는 전남도와 강진군의 행정·재정적 지원 덕분에 숙소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만큼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