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쌀 80kg 3만원’ 정부양곡 저가판매 문제 심각 한해 1조7378억원 적자…수입쌀로만 4599억원 저가공급에 따른 가공·주정업체 편익 7261억원 농민에게만 “재배면적 줄여라” 말할 자격 있나 정부가 벼 재배면적 강제 감축에 나서 농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양곡의 80% 정도가 헐값에 팔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전북 남원시 식정동 들녘에서 한 농민이 콤바인으로 추수를 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수입물량을 그대로 두고 국내 생산면적 강제 감축에 나선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의 양곡정책이 논란을 거듭하는 가운데, 정부의 과도한 양곡 저가판매 행태가 양곡정책의 근본적 문제라는 분석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발 주장으로, 김호 단국대 교수(경실련 상임집행위원)가 그 선봉에 서고 있다.
경실련은 최근 농식품부의 ‘2025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내역서’를 바탕으로 정부 양곡사업 수지를 추산했다. 아직 비공식 내부자료긴 하지만 정부양곡 저가판매와 이로 인한 적자 실태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자료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올해 정부양곡 100만2200톤(공공비축미 재고+의무수입 물량)을 12가지 용도로 나눠 판매할 계획이다. 그중 군수용·관수용·학교급식용·경로당용(총 3만9900톤)엔 모두 80kg당 21만4400원이라는 판매단가가 설정돼 있다.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가격이다.
하지만 복지용으로 들어가면 판매단가는 대폭 떨어진다. 80kg당 기초보장시설용 10만1200원, 차상위계층용 8만원, 무료급식단체용 2만5040원, 생계의료용 2만원이며 총 배정물량은 14만2300톤이다. 단, 복지용 쌀은 정책적으로 응당 저가 공급해야 하는 만큼 여기까진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나머지 4개 용도다. 80kg당 가공용 3만2320원(39만톤), 주정용 2만9120원(13만톤), 원조용 2만8800원(15만톤), 사료용 2만4000원(15만톤) 등 무려 82만톤의 쌀(정부양곡의 82%)을 3만원 안팎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다.
경실련은 정부양곡의 ‘정상적인’ 판매단가를 국산쌀 21만4400원(군수·관수·학교급식·경로당용 판매단가), 수입쌀 12만1577원(수입단가+관세)으로 보고 저가판매로 인한 정부 손실액을 추산했다. 전술한 12개 용도 중 앞의 8개 용도는 당연히 100% 국산쌀을 사용하는 곳이며, 뒤의 4개 용도(가공·주정·원조·사료용)는 각각에 배정될 국산쌀·수입쌀 비중을 경실련이 최근의 정책경향 등을 토대로 임의 구성했다.
계산 결과, 12개 용도를 통틀어 올해 정부가 볼 양곡사업 적자 총액은 1조7378억원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복지용 저가공급으로 인한 손실은 불가피하므로, 문제의 ‘가공·주정·원조·사료용’만 떼놓고 보면 1조4195억원이 된다. 임의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변수가 될 숫자들이 서로 엇비슷하기 때문에 실제와 큰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지난달 26일 경남 진주시 경남도청 서부청사 앞에서 ‘농민권리 침해! 농정쿠데타! 졸속농정 즉각 중단! 벼 재배면적 `강제' 조정제 폐기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 1조4195억원이라는 적자액은 두 가지 기준으로 재구성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수입쌀’만 모아 보는 것이다. 가공·주정·원조·사료용을 불문하고 수입쌀로 인해 발생하는 적자액은 4599억원이다. 정부가 고집하고 있는 연간 의무수입량 ‘40만8700톤’으로 인해 매년 4000억원 이상의 재정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처럼 의무수입물량을 재협상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최근 국산쌀 위주로 배정하고 있는 원조·사료용에 수입쌀을 최대한 늘려야 그나마 식량주권이나 자급률 향상에 도움이 되리라는 게 경실련의 지적이다.
둘째, ‘가공·주정용’만 모아 볼 필요도 있다. 국산·수입을 불문하고 가공용과 주정용에서 발생하는 적자액은 7261억원이다. 이는 정부가 가공업체와 주정업체에 쏟아붓는 돈이나 진배없고, 이로 인해 업체들은 쌀을 정상가 대비 26.6%(가공용), 24%(주정용)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양곡관리 예산으로 기업들이 직접적인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10년 전 쌀 가공산업 발전계획을 수립하면서 초기 시장 확대를 위해 저가로 공급했고 그게 고착됐다. 정부도 이를 현실화하려 고민 중”이라는 입장이며, 경실련은 정부가 판매단가 대폭 인상이나 공매입찰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애당초 100만여톤의 정부양곡 중 ‘정상가격’으로 판매하는 물량이 3만9900톤에 불과하다는 사실부터가 충격적이기도 하다. 가공 등 분야에서 비정상적인 판매단가를 높이고 가공산업의 체질을 정상화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상가격으로 판매하는 군수·관수·학교급식·경로당용 물량을 확대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정부 양곡사업은 필연적으로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공공비축미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식량안보를 위한 필수 지출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연간 1조4195억원이라는 비정상적 규모의 적자는 그간 정부의 역할과 능력이 부족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농민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벼 재배면적 강제 감축’ 정책의 정당성에 다시 한번 의문이 붙는 대목이다.
김호 교수는 “쌀 정책의 해법을 재배면적이나 시장격리 등 국내 생산기반의 변화에서 찾는 건 본질과 거리가 있다”며 “정부 양곡관리의 본질을 예산 부담을 빌미로 해 그 책임을 농민에게서 찾을 게 아니라,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에게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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