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 사망 사고의 절반이 노후 경운기인 것으로 확인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내리막길에서 사고가 난 경운기. 경북도소방본부농촌지역에서 노후 경운기로 인한 고령 어르신 인명사고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 현장에선 노후 경운기 매입, 농작업 대행 확대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농기계 사고 주범은 노후 경운기=경북도소방본부가 집계한 2024년 도내 농기계별 사상자 수와 기종별 농기계 사고 현황에 따르면 농기계 사고 출동 건수는 모두 719건, 사상자는 667명이었다. 이 중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망자는 무려 51명에 달했다.
출동 건수(농기계 사고로 소방이 실제 출동한 건수)와 사상자를 기종별로 분류한 자료는 더 충격적이다. 지난해 경운기 사고로 응급 출동한 건수는 447건으로, 트랙터 112건, 고속분무기(SS기) 33건, 콤바인 13건과 비교해 적게는 4배에서 많게는 34배나 많았다.
경운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 수는 33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65%를 차지했다. 다친 경우도 391명으로 전체 부상자 616명의 63%에 달했다. 연도별 경운기 사고 사망자 수는 2023년 29명, 2022년 20명, 2021년 25명으로 ‘사망사고 1위 농기계’란 오명을 벗지 못하는 실정이다.
연령대별 통계치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4년 농기계 사고 사상자 중 70·80대가 412명으로 전체 사상자의 62%를 차지했다. 사망자도 무려 31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절반이 넘었다. 경남·전남 등 다른 지역에서도 농기계 사고의 절반 이상을 경운기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고령농가가 노후 경운기를 운전하다 사고를 당해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농기계 사고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고 발생의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 근력이 떨어져 운전대 조정이 쉽지 않은 데다, 단독 운행이 많은 농기계 특성, 좁은 농로나 급커브길 등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한 119 신고가 어렵고 그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사망이나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병갑 국립농업과학원 농업공학부 농업연구관은 “현재 농촌 현장에서 운용하는 경운기는 대부분 1990년대 생산한 제품들로, 안전장치가 턱없이 부족해 사고가 났을 때 치명률이 높다”며 “특히 고령 어르신들은 순발력과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경운기 운전 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작업 대행 등 대책 마련 시급=농촌에선 어르신들이 노후 경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단순한 농산물 운반부터 경운·방제 등 농작업에 활용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대중 교통이 마땅치 않은 시골지역에선 이동 수단으로도 활용한다.
30년된 노후 경운기로 농사를 짓는 지태기씨(77·경북 안동시 와룡면)는 “로터리 작업은 물론 거름내기, 농약 살포, 수확한 농산물 운반 등에서 경운기는 아직도 필수 농기계”라면서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치긴 하지만 농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경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후 경운기 사고를 줄이기 위해선 고령 농민의 경운기 사용을 제한하고, 농작업 대행과 농촌 대중교통 확충 등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씨는 “일부 농촌 마을엔 방치된 경운기도 있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후 경운기를 매입해 처리하는 것도 사고를 줄이는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농가는 “어르신들이 농사는 짓되 농기계를 직접 다루지 않도록 하는 ‘농작업 대행 사업’을 확대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김해중 안동와룡농협 영농지원센터 팀장은 “80세에 가까운 어르신들이 20∼30년 된 노후 경운기에 의존해 각종 농작업을 하는 게 농촌 현실”이라면서 “80세 이상 노인의 경우 자동차 면허증 반납 제도처럼 노후 경운기를 반납 또는 매입하는 조건으로, 농작업 대행 사업을 제공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경운기에 전복 사고 감지장치 설치 등 안전장치 보급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