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괄보조금이 지역의 상향식 농정을 활성화할 대안으로 주목받았지만 집행률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중앙정부의 통제, 지역주민과 소통 부재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운영은 국고보조금에 의존한다. 행정안전부의 ‘2023회계연도 결산 결과’에 따르면 지방교부세는 68조4930억원으로 집계됐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같은 해 국고보조금 교부액은 80조6563억원으로 지방교부세를 넘어섰다.
서세욱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최근 농정연구센터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정책이) 국가 주도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재정 구조”라면서 “지역이 특색 있는 사업을 추진할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했다.
포괄보조금 제도는 중앙정부 중심의 경직된 재정 구조를 개선하고자 2010년 도입됐다. 총액 등 포괄적인 조건만 규정하고 세부적인 세목·단가는 지자체가 조정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높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포괄보조사업은 ▲일반 농산어촌 개발 ▲농촌 유휴시설 활용 지역 활성화 ▲취약지역 생활 여건 개조 사업 등 6가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들 사업이 지역 활성화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일반 농산어촌 개발 사업에 참여한 읍·면은 미참여 지역보다 청·장년층 인구, 주택 수 등에서 10%가량 유의미한 변화율을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저조한 사업 집행률이다. 포괄보조사업 가운데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일반 농산어촌 개발, 취약지역 생활 여건 개조 사업은 실집행률이 2023년 기준 각각 53.9%, 49.6%에 그쳤다.
현장에서는 집행률이 낮은 이유로 중앙정부의 개입을 언급한다. 농경연이 광역·기초 지자체의 농식품 분야 포괄보조사업 담당 공무원 25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7∼8월 설문조사를 펼친 결과, ‘중앙부처의 감독 및 통제’(34.4%)가 계획 수립 단계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다. 지방소멸대응기금과 포괄보조사업 간 연계 금지가 대표적이다.
김태후 농경연 연구위원은 “일반 농산어촌 개발 사업은 상대적으로 재정 투입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역은 지방비 매칭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꼬집었다.
지역주민과 소통 부재도 예산 집행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다. 설문조사에서 집행 단계의 애로사항으로는 ‘주민과 사업 협의에 대한 어려움’(37.2%)이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서 교수는 “(사업 추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의 공감대 형성인데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포괄보조사업과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연계를 허용하고, 지자체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지역자주전략교부금은 지자체가 정부 부처간 칸막이에 구애받지 않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재량권 확대에 초점을 맞춰 설계됐다.
지자체의 사업 추진 역량을 강화하려면 임기제 공무원을 고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현재 포괄보조사업은 순환보직제의 특성상 담당 공무원이 자주 바뀌고, 사실상 용역업체가 사업을 대행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전문가를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해 지역에 맞는 사업을 연속성 있게 추진하자는 제안이 뒤따른다.
아울러 중간 지원 조직으로 민간 비영리 네트워크 법인 설립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법인 산하에 연구소·사업단을 둬 지역주민을 직접 고용하고, 의견 수렴을 위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을 보조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