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열심히 했는지 모르겠어요….” “귀농 안하고 하던 일 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텐데….”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마칠 때마다 A씨의 눈에선 눈물이 쏟아졌다. 억울함, 답답함, 야속함, 막막함, 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그 속에 서려 있었다. 전국 대다수의 초보 청년농민들이 같은 심정일 것이다.
예산도 세우지 않고 무리하게 확장한 정부의 청년농 정책이 청년농민들을 빚더미로 내몰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 유도에 따라 청년들이 빚을 내 농사를 시작했지만, 막상 자금이 필요할 때가 되니 정부가 등을 돌린 형국이다.
경북 영천의 청년농민 A(44)씨도 피해자 중 하나다. A씨는 운송업 분야에 종사하다 2년 전 귀농해 한우 사육을 시작했다. 임대농장에서 한우 50두를 기르며 경험을 쌓은 뒤, 이제 자신의 축사를 짓고 본격적으로 영농을 시작할 참이었다.
축산업은 경종농업보다 투자비용의 규모가 훨씬 크다. 청년농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하는 청창농·후계농 육성자금(5억원 한도 장기 저리 대출)이 A씨에게도 꼭 필요했다. 그래서 소를 키우는 틈틈이 교육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따고, 보험과 조합·협회에 가입하고, 서류·면접 심사를 거쳐 ‘후계농’ 자격을 획득했다. 그리고 지난해 상반기에 2억1000만원의 육성자금(정책대출)을 받아 축사 지을 부지를 매입했다.
이제 나머지 2억9000만원의 자금을 받아 축사를 세울 차례였다. 이 사업의 통상적인 진행 과정이 그렇듯, A씨도 대출 확정 이전에 공사를 시작했다. 계약금을 걸고 공사를 시작해 정책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를 셈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8월, 육성자금 예산 조기소진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불안해진 A씨가 행정에 상황을 문의하자 “8월 이전에 계약했고 증빙서류(계약서)가 있으면 우선적으로 사업 대상이 된다”는 답변이 왔다. 축사는 11월에 준공했고, 농협을 통해 2억9000만원 대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감정평가도 받았다. 불안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지난 7일 한 후계농이 새로 지은 축사로 옮겨야 할 50여두의 소가 잠시 머물고 있는 임대 축사를 둘러보고 있다. 그는 “업체에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고서는 나 혼자 살아보겠다고 새 축사를 쓸 수도 없는 일”이라며 답답해했다. 한승호 기자 하지만 결과는 최악의 사태로 흘러갔다. 정부는 30여년 이어온 사업방식을 뒤엎고 2025년부터 돌연 ‘이미 선발해 놓은 청창농·후계농 중 다시 일부를 선발해’ 육성자금을 집행키로 했다. A씨는 사업을 신청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후계농 선발 때 제출해 합격했던 그 서류를 거의 똑같이 제출했지만 결과는 배정 탈락이었다. 축사를 짓기 위한 하나의 사업계획 중 지난해 상반기에 신청한 부지 매입 대출은 승인되고, 올해 신청한 축사 건축 대출은 거부된 기묘한 상황이다.
A씨의 상황은 매우 위태롭다. 공사 잔금을 치르기 위해 통장 잔고를 모두 쏟아붓고, 축사 유지 기반인 암소들을 출하하고, 가족·지인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리기도 했지만 아직도 2억7000만원의 공사대금 중 1억7000만원의 잔금이 남아 있다. 농지 거래의 경우라면 계약금 수백만원을 날리고 영농을 포기할 수라도 있지만 A씨는 축사가 완성됐고 이리로 옮겨와야 할 소까지 갖고 있어 포기할 수도 없다.
“한순간에 제가 사기꾼이 돼 버린 것 같아요. 업체에서 잔금 압박이 오는데 제가 고소를 당한다 해도 할 말이 없어요. 일반대출을 알아보고는 있는데 이자는 둘째치고 얼마나 대출이 될지, 1000만원밖에 안나온다 해도 그거라도 받아서 드려야 할 상황이에요.”
A씨의 사례는 결코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피해자들이 모여 스스로 공개하고 나선 피해 액수만 따져도 17억원(35농가)이며 이조차 수백 혹은 수천명의 피해사례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단지 금전피해만이 아니라 영농 계획, 인생 계획에 중대한 차질을 빚거나 아예 귀농의 꿈을 접겠다는 사례도 계속해서 포착된다.
“저 혼자 이런 일을 당했다면 제가 너무 무지해서 잘못했구나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근데 저같은 피해자가 너무 많고 또 보면 (정부의 잘못이) 뻔하잖아요. 앞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 사람을 아직도 모집하고 있고 더 많아질 거라 생각하니 정말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청년농민들의 잘못이 아니고, 그래서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내뱉는 A씨의 말은, 대한민국 청년농 육성정책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