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하는 ‘벼 재배면적 조정제’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기본직불금을 받는 벼농가들에게 의무적으로 일정 재배면적을 줄이도록 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직불금을 깎는 방식이다. 반면 재배 감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농가에는 직불금을 더 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내년 벼 재배면적을 올해보다 8만㏊ 줄인다는 구상이다.
벼 재배면적 조정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연내 발표하기로 한 ‘쌀산업 구조개혁 방안’의 핵심축으로, ‘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농업농촌공익직불법)’에 근거해 추진된다. 법 제13조에 따르면 농식품부 장관은 재배면적 관리가 필요한 경우 기본직불금 신청·등록을 한 농민 등에게 재배면적 조정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대상 작물 선정과 조정 의무 부과 절차·방법 같은 구체적인 계획은 생산자단체 등과 협의해 정해야 한다. 농식품부는 그 일환으로 9월말부터 ‘쌀산업 구조개혁 협의체’ 등을 운영해 계획을 수립 중이다.
감축 목표인 8만㏊는 올해 재배면적(69만7713㏊)의 11.5%에 달하는 규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 수요와 농가의 벼 재배면적 감축 이행률 등을 감안해 설정한 목표치”라며 “농가당 벼 재배면적 감축 비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지난해부터 쌀 적정 생산을 위해 ▲전략작물직불제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활용한 벼 재배면적 감축협약 ▲농지은행 신규 비축 농지 타작물 재배 ▲농지 전용 등 수단별로 감축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벼 재배면적 조정제는 이런 기존 수단과 별개로 추진된다. 다만 지자체의 벼 재배면적 감축협약은 벼 재배면적 조정제에 포함해 운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략작물직불제 등을 감안하면 ‘8만㏊+α(알파)’의 재배면적이 줄어들 수 있다.
정부는 벼농가수와 재배면적 등을 바탕으로 지자체별 감축 물량을 배정할 예정이다. 감축 재배면적에 벼 대신 심을 수 있는 타작물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구체적인 감축 이행 방식은 지자체 자율에 맡길 방침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소농의 경우 재배면적이 작은 데다 담수 상태의 논에 타작물을 심기 어렵기 때문에 감축면적을 마을 단위 총량으로 배정하는 등 지자체 여건에 따라 다양한 이행 방식을 시행할 수 있도록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감축 의무를 지키지 않는 농가에는 페널티(제재)를 준다. ‘농업농촌공익직불법’과 동법 시행령은 기본직불금 수령자가 재배면적 조정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조정 대상 면적에 대한 직불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1㏊(3000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는 농가가 재배면적의 10%(0.1㏊)를 의무적으로 감축해야 할 때, 어길 경우 0.1㏊에 상응하는 직불금을 감액하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조정 대상 면적에 해당하는 직불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차감하는 방향으로 법령 개정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가가 직불금 감액보다 쌀값 상승 등으로 벼 재배면적 감축에 따른 손실이 더 크다고 판단해 의무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할당된 감축면적 이상을 줄이는 등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농가에는 인센티브(우대 조치)로 직불금을 추가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조정 의무 미이행 농지에서 감액한 직불금을 인센티브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지자체와 벼 재배면적 감축협약을 맺은 농가에 추가 배정했던 공공비축용 벼 물량을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잘 이행하는 지자체에 배분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농식품부는 위성사진과 현장조사 등을 통해 벼 재배면적 감축 이행 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점검 인력 증원 등에 대한 예산은 국회의 내년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통해 쌀 공급량이 줄어들면 쌀값이 상승해 수확량 감소분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일각에선 벼 재배면적을 급격하게 줄이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생산량이 급감해 쌀값이 올라도 정부가 가격 안정을 위해 수입 쌀 물량 중 밥쌀 비율을 늘리거나 정부양곡을 방출하면 (쌀값이 떨어져) 농가들은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만큼의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며 “2년간 전략작물제 시행으로 재배면적이 급증한 콩 등으로 타작물 재배 수요가 몰리지 않도록 감축면적에 벼 대신 심을 품목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