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이야기했다가 긁어 부스럼 아닌지 모르겠네요.”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를 앞둔 가운데 경기지역에서 만난 한 농민은 관련 이야기를 꺼내는 것부터 불편해했다. 그는 이번 조사가 정조준하는 농지 투기 세력이 아니라 시설하우스에서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온 농민이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가 손가락 끝 거스러미마냥 신경 쓰인다고 한다.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농사짓는 땅의 소유주는 수십명에 이른다. 상속과 매매를 거치면서 땅 지분이 여럿으로 쪼개졌단다. 소유주 가운데 영농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그가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었지만 정상적인 임대차계약서는 쓰지 못했다. 2년 전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전손돼 그는 수천만원을 들여 시설을 다시 지었다. 가까스로 영농을 재개했지만 이번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농사를 그만둬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투자한 비용을 회수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유일한 해결책은 그가 농지를 매입하는 것이지만 이미 70대인 그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사연 없는 무덤 없듯이 그의 사례가 아주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농지 임대차는 이미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가 저마다의 사연으로 정상적인 계약서를 쓰지 못한 상태다. 이번 농지 전수조사는 불법 임대차를 적발하고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적법한 땅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취지겠으나, 그 땅에서 쫓겨날 사람은 최소한의 경작권도 지킬 방도가 없는 임차농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5월 1단계 조사에 착수해 의심 농지를 선별한다. 이달 3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정읍·고창)은 무단 휴경이나 불법 임대차 등 위법사항이 적발됐을 경우 처분명령을 이행토록 하는 내용이 담긴 ‘농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적발’ ‘처분’ ‘신고포상금’ 등의 단어가 이어지는 가운데 임차농의 권리 보호에 대한 논의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책 입안자들조차 임차농의 권익을 손가락 끝 거스러미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취재 과정에서 임차농의 입장을 속시원히 밝혀줄 조직을 찾아봤지만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그들을 대변할 조직 하나 없는 현실이 어쩌면 임차농의 취약한 위치를 나타내는 장면이 아닌지 짐작할 따름이다. 길다래 전국사회부 선임기자 kildarae@nong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