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한국농축산연합회, 농민의길, 축산관련단체협의회 소속 농민 1000여명이 37℃를 넘는 무더위 속에서 ‘한-미 상호관세협상 농축산물 개방 반대 전국 농축산인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최흥식 한농연 회장과 임원들이 한우, 쌀, 사과 등에 헌화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수입총량 그대로, 비중만 확대 불구
'일본은 쌀시장 내줬다’ 왜곡보도
일본 정부도 ‘추가개방 없다’ 입장
‘농업 개방 불가피' 여론 호도 목적
명분 없는 데다 농민 설득 어려워
-일본, 쌀 시장 열고 상호관세·차 관세 15%로 막았다(KBS)
-일본, 車·쌀 시장 개방하고 관세 15%로 낮춰... 한국은요?(조선일보)
-日, 760조원 투자·쌀시장까지 개방…車산업 지켰다(서울경제)
-쌀 시장 내주고 車관세 양보받은 일본총리…“대미 흑자국 중 최저 관세율 따냈다”(매일경제)
-‘쌀시장’ 열어주더라도… 세계 차산업 우위 지키겠다는 日(문화일보)
7월 23일 미·일 간 관세 협상이 타결된 이후 국내에서 쏟아진 보도들이다. 일본의 대미 협상 사례를 앞세워, 한국 역시 농산물 시장을 내주는 대가로 자동차 관세 인하 같은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담겼다. 그러나 한미 간 통상 협상이 초읽기에 들어간 시점에서 나오고 있는 이 같은 보도는 실제 협상 내용과 다를 뿐 아니라, 농산물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식의 여론몰이로 협상 전략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송옥주 더불어민주당(경기 화성갑) 의원실에 따르면, 일본은 TRQ(저율관세할당물량) 77만톤이라는 기존 물량은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안에서 미국산 쌀의 수입 비율만 높이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했다. 실제로 일본 농림수산대신도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추가 수입쌀이 들어오는 일은 없다’며 쌀 시장 자체를 개방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 농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자국 농가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미국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에서 협상을 끝냈다”며 “국내 언론이 보도한 일본의 ‘쌀 시장 개방’은 오해의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한국 다르다···“미국에 쌀 더 줄 수 없는 구조”
이 같은 협상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일본의 쿼터 운용 방식이 있다. 일본은 TRQ 전체를 글로벌 쿼터로 운용하고 있어 국가별 할당 없이 수입국 비중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중국(15만7195톤), 미국(13만2304톤), 베트남(5만5112톤), 태국(2만8494톤), 호주(1만5595톤) 등 5개국과의 협정에 따라 국가별 쿼터를 고정해놓은 상태다. 전체 TRQ 물량 중 95% 이상이 이미 할당돼 있어, 특정국 수입 비중을 조정하려면 5개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 구조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쌀 수입 총량은 그대로 둔 채 미국의 요구에 '부분적 만족'을 안겨줬고, 미국은 이를 ‘시장 개방’으로 포장해 정치적 성과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를 일본이 실제로 농업을 양보한 것으로 해석하고, 한국에 쌀 시장 개방을 압박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한 비교라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FTA 혜택 누린 제조업에 또 농업 희생양 돼야 하나
더욱이 한국 제조업 상황은 일본과 단편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자동차 등 주요 수출품의 관세가 대부분 0%인 반면, 일본은 여전히 2.5%의 자동차 관세를 부담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이 높은 상황에서 농업만 추가로 개방하라는 요구는 정당성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전문가인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일본은 자국의 쌀 수입 제도 틀 안에서 글로벌 쿼터를 활용해 미국산 비중을 늘렸을 뿐, 쌀 시장을 개방하거나 수입 총량을 늘린 것은 아니”라며 “이를 쌀 시장 개방으로 포장해 일본이 제조업을 지켰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FTA로 제조업은 다른 나라 대비 이미 상당한 관세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도, 농업에 희생을 강요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우리가 무관세인 반면 일본은 (이번에 타결된 15%를 제외하더라도) 미국 수출에 2.5% 관세를 여전히 부담하고 있다“며 “FTA 이후 수혜를 누린 산업들이 상생 기금 등 책임을 분담한 적도 없는데, 자동차 수출을 위해 농업을 희생시키겠다는 주장을 농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용산 대통령실로 가자'···들불처럼 번지는 농업계 반발
한편 정부와 대통령실이 7월 25일 통상대책회의 직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협상 품목 안에 농산물이 포함돼 있다”며 농산물 시장 개방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 있음을 공식화한 뒤, 농업계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28일 전국 50여개 농민단체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000여명이 참여한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산물 개방 반대 전국농축산인 결의대회’를 개최했고, 25일에는 한국후계농업경영인경상북도연합회 소속 500여명이 대통령실 인근에서 ‘경북 농민대회’를 여는 등 집회와 기자회견, 성명 등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서도 농해수위 여야 의원들이 나란히 우려를 표명하며 농업계에 힘을 보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