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짧게나마 누렸던 읍면 자치권 잃은 후
보건소·학교 사라지고 농촌소멸 가속
일본 정촌처럼 읍면 지위 강화해야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1999년 제정, 2000년 시행)에서 농촌이란 ‘읍·면의 지역’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읍·면은 동과 함께 지방행정체제에서 최말단의 행정기구이기도 하다. 일제 식민통치시기인 1917년 총독부가 ‘면제(面制)’를 발포한데 이어, 1930년 ‘읍면제(邑面制)’를 발포, 형식적이지만 읍면은 지방자치단체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다음 해인 1949년 지방자치법을 제정, 도와 서울특별시, 시·읍·면을 지방자치단체로 하고, 도지사와 서울특별시장은 대통령이 임명, 시·읍·면장은 지방의회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도록 하였다.
비록 간선제이긴 하지만 읍·면장을 읍면의회에서 선출하여, 읍면이 자치단체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1956년에는 지방자치법을 개정, 시·읍·면장을 선거권자(지역주민)가 직접 선거로 선출하였다. 읍면의 지방자치단체로서 지위는 그리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 기초지자체를 시·군으로 변경하고 읍·면이 가진 모든 권한을 군에 계승하도록 하였다. 또한, 모든 지자체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함으로써 형식적인 지방자치만 남게 되었다. 1972년에는 헌법을 전부개정(유신헌법)하고 부칙 제10조에 “이 법에 의한 지방의회는 조국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사실상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1987년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6.10 민주항쟁으로 표출되었고, 당시 민정당 노태우 대표는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직선제와 기본인권 신장,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등 사회 전반의 민주화 조치 8개 항을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1987년 직선제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1988년에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을 통해 지방의회를 우선 복원하였다. 1995년 6월 27일 주민이 직접 선출한 민선 1기 지방자치단체가 출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를 특별시와 직할시, 도·시와 군·구로 명시함으로써 읍면은 자치권을 회복하지 못했다.
읍면행정 지위가 시군 하부행정기관으로 축소되면서 읍면장은 임명제로 전환되었고, 읍면은 자체 발전계획 수립 및 예산편성, 인사 등 제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읍면 지위와 기능 축소는 농촌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을까? 우선 읍면에 소재한 공공기관 통폐합이 전면적으로 추진되었다. 1995년 보건소와 농촌지도소 등 시·군을 공간범위로 지방행정조직을 통폐합하여 효율화를 도모하였다. 당시 전국 면 지역에서 운영 중이던 1천3백14개 보건지소와 2천34개 오지마을 보건진료소에 대한 통폐합이 추진되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시군 단위로 통합보건지소를 설치하여 농어촌 1차 의료기관으로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하였지만, 현실은 농어촌 의료공백으로 농어촌 인구감소와 농촌소멸을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농촌지역 학령인구 감소로 1982년부터 가시화된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은 1998년과 1999년에 학생 수 100명을 기준으로 전국 4,714개 학교를 통폐합하였다. 소규모학교 통폐합은 그렇지 않아도 인구가 줄고 있는 농어촌지역에서 아동·청소년과 청년세대 인구유출을 가속화, 농어촌 인구 고령화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정부의 교육재정 효율화를 위한 소규모학교 통폐합에 대응, 1993년부터 ‘농촌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이 전국 농산어촌 주민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정부는 뒤늦게 ‘1면 1학교 유지’라는 원칙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읍면 공공기관 통폐합 과정에서 읍면은 어떠한 역할을 담당했을까? 시군 하부행정기구로 자치권한이 없는 읍면은 시군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읍면의 주된 기능은 통합민원과 사회복지, 일반행정, 산업기능(읍면)과 보건·민방위·안전, 그리고 일부 시군 위임사무이다.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읍면동 복지허브화’를 추진하여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기능을 강화하였고,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주민자치형 공공서비스 구축사업’을 통해 읍면동 주민자치와 찾아가는 보건복지팀 설치를 확대하였다. 2023년 윤석렬 정부에서는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읍면동의 안전 기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시대와 여건 변화에 따라 정부에서는 읍면동 기능 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것이다. 농촌소멸의 우려 속에서 읍면 농촌지역 행정은 어떠한 기능과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읍면에 상응하는 일본의 정촌(町村)자치와 기능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정촌은 지방자치단체로서 지자체장을 주민이 선출한다. 주요임무는 의료·보건위생, 복지, 교육(초중학교 설치 관리 등), 환경, 마을만들기·지역만들기, 치안·안전·방재, 기타(통합민원 등)으로 구성된다.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정촌은 자체적으로 지역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읍면이 자체계획 수립 권한과 예산편성 권한도 없다는 점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정촌에 교육과 마을만들기·지역만들기 기능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농촌소멸 위기 속에서 읍면 현장의 교육 및 생활여건 개선 등 지역개발 문제를 여전히 시군에 의존하여 추진하고 있는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정책만으로는 농촌소멸 극복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농촌재생과 활력 제고를 위해서는 읍면의 지위 및 기능 강화를 함께 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