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 간담회 직전 ‘가입 효과’ 자료 배포에 농축수산단체 반발 정부 “업계 의견 듣겠다”…단체 “뒤에서는 가입 추진?”
28일 오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CPTPP 가입저지 농림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주최 관계 부처 합동 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간담회 시작 전 정부가 CPTPP 가입에 따른 경제 효과 등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한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측 인사들이 농림축수산 단체장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뒤 간담회장을 떠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축수산단체가 마련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간담회에서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쫓겨나는 등 정부와 생산자단체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CPTPP가입저지농림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CPTPP비대위)’는 28일 관계부처 합동 간담회를 열고 정부의 CPTPP 가입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정부는 아직 가입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으며 농림축수산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날 간담회에 앞서 CPTPP 가입에 따른 영향평가 결과와 경제적 효과를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축수산단체가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참석한 정부 관계자들이 행사장을 떠나는 등 간담회는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CPTPP비대위는 이날 산업통상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산림청 관계자들을 초청해 CPTPP 가입에 따른 분야별 영향평가 결과를 청취했다. 윤일권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상임대표,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노만호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상임대표, 오세진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 이승호 한국농축산연합회장, 김영복 전국어민회총연맹 회장 등 농림축수산 단체장과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CPTPP 가입 농림축수산업 말살, 가입 추진 즉각 중단하라’, ‘식량주권·검역주권 포기, 반복되는 농업인 홀대 CPTPP 가입 추진 강력 규탄한다’ 등의 구호로 시작됐다.
 28일 오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CPTPP 가입저지 농림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주최 관계 부처 합동 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이 간담회 시작 전 정부가 CPTPP 가입에 따른 경제 효과 등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한 사실을 알리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축수산 피해규모 현실과 달라”
이날 공개된 영향평가에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CPTPP 가입에 따른 농업 생산액 감소 규모를 향후 15년간 연평균 약 7100억원으로 추산했다. 분야별로는 과실, 축산, 채소 순으로 영향이 클 것으로 분석했으며, 꿀과 차류 등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수산업의 경우 관세 인하에 따른 생산액 감소 규모를 연평균 최소 34억원에서 최대 817억원으로 추산했다. 업종별로는 양식업과 연안어업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분석했으며, 품목별로는 어류·갑각류·해조류 순으로 피해 규모가 클 것으로 전망했다. 임업 역시 연평균 약 605억원의 임산물 생산액 감소가 예상됐다.
반면, 제조업 분야에서는 산업연구원이 CPTPP 가입에 따른 수출이 연평균 약 30억달러 증가하고, 생산파급 효과는 약 6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자동차·철강 등을 중심으로 수출 증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생산자단체들은 정부의 영향평가가 농업·농촌 현장의 현실과 시장개방에 따른 누적 피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CPTPP 가입국 대부분이 이미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상황에서 정부가 ‘무역 다변화’를 가입 필요성으로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또 식량안보를 국가의 핵심적인 안보 영역으로 보고 시장개방에 따른 농림축수산업의 피해를 단순한 산업별 손실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승호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정부가 CPTPP 가입을 공식화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해선 안 된다”며 “FTA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이미 깨졌다. CPTPP는 FTA와 달리 다자간 협상이기 때문에 피해가 더 클 수 있는 만큼 철저하게 가입 저지를 위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다.
윤일권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상임대표도 “국내 곡물자급률이 21%이고 쌀을 제외하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국민의 안정적인 먹거리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오세진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은 “FTA로 수많은 역경을 겪었는데 축산물 자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또다시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며 “농업인들이 지키는 식량안보를 언제까지 담보로 삼을 것이냐”고 말했다.
정부 “가입 결정된 바 없어”
정부는 CPTPP 가입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권혜진 산업통상부 통상교섭실장은 “CPTPP 가입 신청과 관련해 정부 입장이 결정된 것은 없다”며 “농림축산업계의 이해나 공감 없이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의견수렴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CPTPP 가입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미·대중국 교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시장 다변화와 공급망 안정화 등을 위해 CPTPP가 필요하다는 것이 산업통상자원부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다만 가입을 결정할 경우 농수축산 분야의 피해가 클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협상 과정에서 농수축산업계와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상호 농림축산식품부 국제농식품협력관 역시 “정부가 CPTPP 가입을 결정해놓고 요식행위로 온 것이 아니다”며 “가장 위험한 품목과 그에 대한 대책, 실효성을 높일 방안 등을 함께 논의하자”고 했다.
“의견 듣겠다더니”…간담회 직전 ‘CPTPP 효과’ 발표
하지만 간담회 막판 산업통상부가 이날 행사에 앞서 CPTPP 영향평가 결과와 가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생산자단체들은 정부가 간담회에서는 ‘가입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도 행사 직전에는 제조업 등 국내 산업의 경제적 효과와 농림축수산업의 피해 규모를 담은 자료를 배포한 것은 사실상 가입 추진을 전제로 한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특히 보도자료가 산업 전반의 경제적 효과와 농림축수산업의 피해를 함께 제시하면서, 농어업계의 희생을 전제로 다른 산업의 이익을 강조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영이 전여농 회장은 “간담회 자리에 오면서 뒤로는 이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농수축산업계가 마치 적은 희생도 감수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지게 해 국민과 농어업인을 이간질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영향평가 역시 A4 한두 장짜리로 부실하기 그지없다”며 “그동안의 FTA에 대한 평가와 결과부터 제시하고 CPTPP 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이전 시장개방이 농업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분석하지 않은 채 부실한 자료를 가지고 농업인 단체를 상대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석자들은 정부 관계자들에게 보도자료 배포 경위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정부부처 관계자는 나가라”, “사과하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결정된 것이 없다면서 뒤에서는 가입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며 더 이상의 대화가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행사장에서 쫓겨나면서 간담회는 사실상 파행됐다.
CPTPP비대위는 정부 관계자들이 퇴장한 이후 별도로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향후 비대위는 정부가 주최하는 CPTPP 관련 설명회에 불참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축산단체들은 29일 예정된 농림축산식품부 주최 축산분야 생산자단체 실무자 간담회를 보이콧하기로 했다.
한편 CPTPP비대위는 농업·축산·수산·임업 분야 75개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지난 21일 출범했으며, 오는 10월 15일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1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CPTPP 가입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등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28일 오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CPTPP 가입저지 농림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주최 관계 부처 합동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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