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배 주산지에서 폭염과 호우로 인한 일소·열과 피해가 공통적으로 발생하면서 추석 이후 수확한 물량의 30% 이상을 폐기해야 할 지경에 놓였다. 조성원 천안배원예농협 차장이 16일 방문한 조합원 농장에서 폐기용으로 선별돼 쌓여있는 피해 물량을 살펴보고 있다.
농작물재해보험 적용 안돼 농가 보상도 못받고 ‘막막’
농업재해로 인정 촉구 정부 대책 마련 목소리 고조
수확기 출하 이후 저장 작업이 한창인 배 주산지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여름철부터 이어진 폭염과 추석 이후 쏟아진 집중호우가 맞물려 때아닌 ‘일소’·‘열과’ 피해가 전국적으로 속출하면서 수확량의 최소 30% 이상을 버려야 하는, 재난 같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더구나 열과 피해는 농작물재해보험 적용 대상에 들어있지 않아 피해 보상이 막혀 있고, 폐기 손실은 물론 추가 피해도 예상되고 있어 이번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하는 등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한국배연합회와 산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여름부터 두 달 넘게 이어진 고온이 9월 수확기에도 지속된 상황에서 추석 물량 출하 이후 9월 중하순 쏟아진 집중호우로 인해 과실의 겉면이 찢어지거나 물러 터져 부패하는 열과 피해와 햇볕 데임으로 과피 색깔이 변하는 일소 피해가 같이 나타나고 있다. ▶관련기사 5면
피해 규모는 심각하다. 지역마다 편차를 보일 뿐 전국 배 주산지에서 공통적인 열과 피해가 발생해 저장창고에 들어가야 할 물량의 최소 30% 이상을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농협경제지주와 배연합회가 이달 8일 현장 조사에 착수해 파악한 피해 규모는 추석 이후 수확량 중 피해율이 전국 평균 30%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피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배 재배 과정에서 봉지를 씌우는 특성상 봉지를 일일이 벗기지 않고서는 열과 피해 여부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봉지째로 창고 저장을 마친 농가의 경우 시간이 흐른 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릴 수도 있고, 지금부터 짧게는 내년 설(1월) 또는 길게는 그 이후까지 저장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감모율 피해도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열과가 생긴 과실을 정상 과실과 함께 보관하면 정상 과실에서도 조기 숙성(노화)이나 부패 등의 2차 피해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과 같은 수확기 열과 피해가 농작물재해보험 적용 대상에 들어있지 않아 농가들이 제도적으로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현행 재해보험에서는 폭염과 호우, 가뭄 등의 자연재해에 대한 보상 규정이 있는데, 일소의 경우에도 낙과 물량에 대한 피해 보상만 가능하고 열과 피해에 대한 내용은 약관 자체에 들어있지 않아 보험 적용이 현실적으로는 불가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폭염과 호우에 의한 일소·열과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9월 하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이후 한 달 가까이 지나고 있는데, 중앙정부 차원의 피해 보상 방침은 나오지 않고 있다. 주산지 지자체와 농협을 중심으로 시장 격리, 영양제 지원, 재난지원금 등의 일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산지 관계자는 “현장 피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농가는 ‘태풍이 3번 온 것 같다. 그런데 차라리 태풍이면 더 나았을텐데’라는 얘기를 했다. 열과의 경우 피해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고 시간을 두고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피해 산정이 어렵고, 현행 보험에서도 보상 규정이 없어 폐기 손실을 오롯이 농가들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지난해 냉해 피해로 생산량이 급감한 데 이어 올해 일소·열과 피해에 따른 생산량 감소로 농가 소득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번 열과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해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자 단체 관계자도 “농식품부에서 현장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피해 현장을 둘러보면 농민들의 아우성이 큰데, 문제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지 한 달이 다 되고 있는데 피해 보상 등 산지에서 요구하는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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