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단체가 '농업 개도국 지위 포기'라고 적힌 관을 불태우며, 정부의 WTO(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 포기를 규탄했다. 정부가 발표한 농업 경쟁력 강화 정책도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특단의 조치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28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한국농축산연합회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대로에서 'WTO 농업분야 개도국 포기 규탄! 농정개혁 촉구! 전국농민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난 10월 25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정부가 피해 당사자인 농업인의 의견을 무시한 채 WTO 농업 부분 개도국 지위를 더 주장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라며 "이는 우리 미래 농업을 포기한 처사로 정부를 강력히 규탄하며 근본적인 농업 정책 수립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한국농축산연합회는 이어 "정부는 그간 각종 FTA(자유무역협정) 등 양자 간 협상에서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농업의 위기를 심화시켰다"라면서 "정부는 이제 마지막 보루인 개도국 지위마저 포기했다. 이후 발표한 농업 경쟁력 강화 정책도 기존의 제도 개선이나 검토 수준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정부는 WTO 개도국 지위를 기반으로 농업 분야를 지원해 왔다. 국내 농산물 시장을 고율 관세로 보호하고 농업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또 수입산 쌀에 최대 513%까지 관세를 부과했으며 쌀 농가에 정부 보조금도 지급했다.

하지만 'WTO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수입산 쌀이 '선진국 일반품목'으로 전환되면서 관세가 154%까지 떨어져 쌀농가는 타격을 입게 된다. 또 쌀 이외 농산물 관세가 기존 17.3%에서 4%로 낮아져 농산물 시장 대부분이 개방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쌀 농가에 지급되던 정부 보조금도 현재 약 1조 5000억 원 수준에서 7000억 원대로 축소된다.

집회 참가자들은 정부에 ▲농어촌 상생 기금의 정상화와 1조 원 조성 ▲공익형 직불제 예산 3조 원 확보 ▲농식품바우처사업 전면 도입 ▲농업자금 정책 금리 인하 및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 한도 5천만 원 확대 ▲농지은행 재정 규모 2배 확충, 농지 제도 개혁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범부처와 민간이 참여하는 특별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했다.

현재 정부는 '당장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라는 입장이다. 앞으로 있을 WTO 협상이 타결되어야 개도국 특혜가 적용되지 않는 만큼 그때까지 관세 및 보조금 특혜에는 변동이 없다는 것이다. 또 '공익형 직불제'를 도입해 작물과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날 한국농축산연합회 임영호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정부는 대책도 없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우리나라 농업이 트럼프 한 마디에 이렇게 망가지면 안 된다"라면서 "국회는 자기들 이익만 챙기고, 정부는 대통령 눈치만 보고, 대통령은 선거 때와 달리 농민 인구가 얼마 안 된다고 무시하고 있다"며 날선 말을 쏟아냈다.

국회의원들도 마이크를 잡았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황주홍 위원장(민주평화당)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다"라며 "지난 1995년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받을 때 농가 소득이 도시 소득 대비 95%였는데 지금은 65%에 불과하다. 내년 정부 예산 513조 중 농업 분야 예산도 3%가 안 되는 역대 최저다. 정부가 농업 분야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결의문을 채택하고 대정부 투쟁을 이어갈 계획을 밝혔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우리 농산물은 일시적 보호장벽이 허물어져 이제 거대한 외국 농업자본과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라며 "더는 우리의 문제를 정부나 정치인들의 혀 발림에 놀아나지 말고 스스로 힘과 의지로 현 정세를 타개해 나가자"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