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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뉴스

농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농촌사회 건설을 위해 농촌복지 향상에 총력을 경주하고, 농업의 가치와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킨다.

(농민신문)[취재수첩]어느 청년 귀농인의 한숨

작성자
hannong
작성일
2018-12-24 09:31
조회
1085

저는 청년 귀농인입니다. 도시에서 조선업에 종사하다 친구의 권유로 1억2000만원을 대출 받아 올해 처음 무화과농사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귀농인’이 되겠다는 소박한 꿈이 산산조각 나는 데는 채 몇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6월말 쏟아진 폭우로 하천이 범람해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던 비닐하우스를 덮쳤습니다.

평소대로라면 금방 물이 빠질 법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농장에서 500여m 떨어진 철도 공사장 인근에 트럭이 지나다닐 다리를 만든다며 하천을 막고 그 밑에 서너개의 임시 배수관을 설치했는데, 결국 이것이 물길을 막아 사달이 난 것입니다.

대출금도, 무화과도, 귀농의 달콤한 꿈도 물과 함께 모두 휩쓸려 가버렸지만 그냥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먼저 시공사와 시행사 관계자를 만나 책임을 따졌습니다. 그렇지만 “원래 그곳은 상습 침수구간인 데다, 집중호우 당일 배수관까지 철거했을 만큼 충분한 조치를 취했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저를 더욱 절망케 한 건 관계자들의 태도였습니다. 제가 말을 이어가는 내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힘없는 농민의 하소연을 들어야 할 단 몇십분도 아깝다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다음 찾아간 군청 공무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군민이 피해를 봤는데도 담당자는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한 신문사 기자가 관련 사건을 취재하기 시작하면서 겨우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기자와 함께군청을 다시 찾아가자 담당 공무원은 일이 터지고 보름이 지나서야 “공사 발주처에 공문을 보내 피해조사에 나서게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침수피해 기사가 나가자 이번에는 발주처에서 “가입한 재해보험의 규정에 따라 보상금을 3000만원가량 지급할 수 있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문득 최근에 읽은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제 상황과 겹쳐지며 떠올랐습니다. 한센병 원생들에게 소록도를 지상낙원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며 부임한 수많은 소설 속 원장들은 섬에, 혹은 원생의 마음에 자신의 명예를 드높일 ‘동상’이 세워질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터라 쑥대밭이 된 무화과 시설하우스를 잠시 뒤로하고 지인 농장에 일을 도와주러 가는 길입니다. 손에 들린 한 농업전문지 1면에 실린 ‘농업예산 비중 축소 고착화’라는 기사가 눈에 확 띄었습니다. ‘대통령이 분명히 농업을 직접 챙긴다고 했는데….’

언제까지 농민의 삶과 거리가 먼 ‘당신들의 천국’이 만들어지는 걸 보고 있어야 하는 걸까요. 끝 모를 절망감에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는 걸 막을 길이 없습니다.

이문수 (농민신문 전국사회부 기자) leemoonsoo@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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