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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사과는 갈라지고 씨감자는 썩고..농약·재료값 감당 막막"

작성자
hannong
작성일
2018-09-04 09:58
조회
815






[경향신문] ㆍ데고 썩고 물러지고…농심이 무너져내렸다 ㆍ냉해·폭염·폭우 끝없는 재난…“곧 추석인데 수확량 반토막”

3일 충북 영동의 사과 농장에 폭우와 태풍으로 사과들이 떨어져 썩어가고 있다. 권도현 기자

“추석 대목 하나 보고 이제껏 버텼는데….” 3일 오후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옹북리에서 만난 35년차 농부 손동길씨(55)는 과수원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1600㎡ 정도 되는 손씨의 과수원에는 나무에서 떨어져 검게 변한 사과들이 흙투성이가 된 채 뒹굴고 있었다. 추석 선물로 인기가 많은 자홍 사과다. 살인적인 폭염도 이겨내고 수확을 기다리던 손씨 과수원의 사과들은 지난달 26∼31일 사이 영동지역에 내린 많은 비와 강한 바람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나마 아직 나무에 달려 있는 사과도 멀쩡한 것이 많지 않다. 바짝 말라 있던 나무가 수분을 한번에 흡수해 열매가 반으로 흉하게 갈라지고 과육이 누런색으로 변하는 열과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포도 농사도 함께 짓는 손씨는 올해 냉해와 가뭄·폭염까지 겹치면서 이미 한 차례 농사를 망쳤다. 그는 “평생 과수농사를 했는데 올해 같은 경우는 없었다. 태풍이 탈 없이 지나가 한시름 덜고 있었는데 강풍과 폭우로 사과농사마저 망쳤다”며 “수확량이 반 토막도 안될 것 같은데 빌려 쓴 농약값이니 재료비용을 다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여름내 폭염에 신음하던 농심이 최근 전국을 훑고 간 폭우에 다시 한번 무너졌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26일부터 한 주간 이어진 지역별 집중호우로 전국에서 발생한 농작물 침수와 농경지 매몰 피해 면적은 약 730㏊(9월1일 기준)에 이른다. 벼 침수 피해 면적이 351㏊로 가장 많았고, 채소 229.4㏊, 과수 17.7㏊ 등이 침수됐다.

중부내륙 최대의 곡창지대로 꼽히는 강원 철원지역에서는 벼 재배 농민들의 피해가 컸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달 28일부터 이틀간 400㎜가 넘는 장대비가 내리면서 벼 100㏊를 비롯해 120㏊의 농경지가 침수됐다.

데고 썩고 물러지고…무너진 농심 폭우로 전국 농작물 침수·농경지 매몰 피해 면적 약 730㏊ 농작물 가격 크게 올라 소비자들도 “갈수록 장보기 두려워”

진흙에… 폭우가 내린 지난달 30일 경기 파주시의 한 비닐하우스 농작물이 진흙으로 덮여 있다. 연합뉴스

농민 심창보씨(55·철원군)는 “지난달까지 벼 생육 상태가 좋아 평년작을 상회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갑자기 폭우가 내려 농경지가 침수되고 수확량도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 장대비가 쏟아져 손쓸 틈도 없었다. 철원에서만 200여 농가가 침수 피해를 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확기를 앞둔 벼의 낱알이 흙탕물에 침수되면 수확량이 줄고, 상품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농민들의 설명이다.

■ 날씨 탓에 이·삼중고

문제는 당장 이번 호우 피해 뿐만이 아니다. 올해 봄철 이상저온과 여름철 장기 폭염 등 날씨 탓에 농민들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다. 사과 주산지인 무주·진안·장수 등 전북 동부산악권에서는 냉해와 폭염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폭우로 떨어지고 갈라진 과일을 보며 한숨 짓고 있다. 장수군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송현섭씨(58)는 “갑자기 너무 많이 비로 수분을 과다하게 흡수한 과일이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4월에는 눈이 내려 냉해폭탄을 맞았고, 여름에는 폭염으로 타 들어간 사과가 폭우까지 겹치면서 온전하길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고 말했다.

애써 키워 수확을 앞두고 있던 농작물이 물에 잠기는 등 피해를 입은 농민들의 심경은 어디서나 매한가지다. 경남 밀양시 농민 박수흠씨(58)는 “수년간 농사를 지었는데 이번 같은 폭우는 처음이었다. 감자밭이 모두 물에 잠겼다”며 “1000만원 들여서 밭 1만1115㎡에 씨감자를 심고 10∼11월 수확하려 했는데 감자가 모두 썩어 다시 심어야 한다”고 허탈해 했다. 경남지역 역시 지난달 26일부터 내린 폭우로 창원·밀양·의령·함안·산청 등 6개 시군에서 476개 농가 230.6㏊의 농작물이 침수되는 피해를 봤다.

경기지역에서는 하우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피해가 컸다. 여주·광명·이천·파주시에서 지난달 29일 집중호우로 비닐하우스 87개동 10만8240㏊가 침수됐다. 특히 300㎜ 가까운 ‘물폭탄’이 쏟아진 파주시에서는 파평면 일대 비닐하우스 90% 이상이 물에 잠겼다. 비닐하우스 18동을 경작하는 홍모씨(61)는 “한창 자라야 할 열무들이 다 쓸려 나와 나뒹굴고, 하우스 안에 남은 열무 잎도 흙탕물 범벅이 됐다”며 “혹시나 다시 자라는 열무가 있을까 물을 줘 보고 있지만 거의 못쓰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태풍에… 3일 충북 영동군의 한 사과 농장에서 농민이 최근 불어닥친 태풍과 폭우로 나무에서 떨어져 검게 변한 사과들을 정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이천시 호법면 최모씨(56)의 9900㎡ 규모 비닐하우스에서도 새록새록 자라던 돗나물과 아욱, 치커리 등 각종 채소가 갑작스레 내린 장대비에 몽땅 쓸려 나갔다. 최씨는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져 급하게 농작물을 수확했는데 비닐하우스로 물이 무섭게 들어와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워서 포기하고 도망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태풍 ‘솔릭’이 지나간 데 이어 기록적인 폭우까지 쏟아진 제주지역 농가의 근심도 깊다. 지난 1일 갑작스런 폭우로 서귀포시의 일부 감귤 밭이 1m가량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고, 전국 생산량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제주산 콩나물콩은 날씨 탓에 작황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 농산물 가격에 소비자들도 근심

올해 장기간 지속된 폭염과 잇따라 찾아 온 폭우는 산지 농민들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생산량 감소로 채소류를 중심으로 농작물 가격이 평년보다 높게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두고 과일 등 다른 성수품 가격도 덩달아 오를 것이란 우려가 크다. 대전원예농협공판장 관계자는 “현재 채소는 시금치나 배추 등 대부분 가격이 작년 보다 올랐다고 보면 된다. 최근 비가 많이 내려 일조량이 부족해지고 생장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생산량 감소로 인한 가격 상승 요인이 되고 있다”며 “채소류는 식당 등에서 수요는 꾸준한데 물건 자체가 줄어 판매가 어렵고,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 과일 등의 가격 상승 요인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폭우에… 지난달 30일 강원 철원읍 화지리에서 한 농민이 폭우로 쓰러진 벼를 일으키고 있다. 연합뉴스

도심의 대형마트 등에서는 실제 크게 오른 가격 때문에 채소류 코너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부산의 한 대형 할인점에서 만난 주부는 “채소와 과일 값이 지난달 초·중순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뛴 것 같다”며 “추석이 다가오면 가격이 오르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비싼 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의 한 대형마트 채소 진열대에서는 요즘 배추가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최근 한달 사이 가격이 3배 이상 올라 배추를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주부 김모씨(43)는 “요즘 채소 값이 너무 올라 고기를 채소에 싸먹는 게 아니라 채소를 고기에 싸먹어야 할 것 같다”며 “갈수록 장보기가 두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종섭·이삭·박용근·최승현·최인진 기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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