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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뉴스

농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농촌사회 건설을 위해 농촌복지 향상에 총력을 경주하고, 농업의 가치와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킨다.

(경향신문)[재난이 된 폭염

작성자
hannong
작성일
2018-08-10 09:35
조회
752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8일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1리 한 수박밭에 강한 햇볕으로 껍질이 하얗게 변하고 속이 상한 수박들이 줄지어 버려져 있다. 이 수박밭에서는 수확하려던 6000여개 중 80~90%가 버려졌다. 영주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8일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1리 한 수박밭에 강한 햇볕으로 껍질이 하얗게 변하고 속이 상한 수박들이 줄지어 버려져 있다. 이 수박밭에서는 수확하려던 6000여개 중 80~90%가 버려졌다. 영주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가뭄에 썩어버린 벼·수박·채소
“종잣값도 못 건져” 농민들 시름
피해 면적 이미 여의도의 5.4배
추석물가 비상 ‘밥상 재난’ 우려

“종잣값도 못 건집니다.”

타들어가는 들녘을 멍하니 바라보는 농민 우병택씨(64)의 얼굴에는 망연자실한 기색이 역력했다. 8일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1리. 우씨가 정성 들여 가꾸던 9900㎡의 수박밭에는 껍질이 하얗게 변한 ‘피수박’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우씨가 수박 하나를 집어 칼로 베자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 대신 ‘피식’ 하며 가스 새는 듯한 소리가 났다. 수박 안에서는 잔뜩 고여 썩은 물로 악취가 진동했다. 그는 현재 수확을 포기했다.

우씨의 수박밭에서는 결실을 맺은 수박 6000여개 중 80~90%가 이미 상해버렸다. 우씨는 “도매상에 넘기면 3500만~4000만원은 받았을 텐데 씨 뿌리고 퇴비 준 돈도 건질 수 없게 됐다”며 “상해버린 수박을 치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매일 하늘만 원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b>썩고…</b> 경남 거창군 주상면 거기마을 한 사과농장 농민이 8일 햇볕에 타서 썩어들어가는 일소피해를 입은 사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썩고…?경남 거창군 주상면 거기마을 한 사과농장 농민이 8일 햇볕에 타서 썩어들어가는 일소피해를 입은 사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전국에서 강한 햇볕과 고온에 장기간 노출된 농작물들이 타들어가고 있다. 농민들은 “농촌은 재난 수준”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이미 도시 소비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지난 7일 집계한 ‘주요 농산물 일일 도매가격’ 현황을 보면 23개 농산물 품목 가운데 양파와 청상추, 애호박 등 7개 품목을 제외한 모든 품목의 농산물 가격이 평년 가격보다 상승했다. 예년보다 빠른 올 추석 물가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폭염으로 전국에서 폐사한 가축은 이날 오전까지 집계된 것만 닭 448만3000마리, 오리 21만6000마리, 돼지 1만9000마리 등 모두 476만5000마리다. 농경지에서는 약 1565.8㏊에서 작물이 말라 죽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피해 면적으로 보면 여의도(290ha)의 약 5.4배에 이르는 규모다. 정부는 지난 7일 밭작물 급수대책비로 48억원을 추가 배정하고, 축사용 냉방장치 설치에 60억원을 지원키로 하는 등 농축산물 폭염 피해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b>타고…</b> 8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영전2리의 한 논에 심어진 벼가 타들어가고 있다. 권순재 기자

타고…?8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영전2리의 한 논에 심어진 벼가 타들어가고 있다. 권순재 기자

이날 오전 찾아간 충남 서해안의 대규모 간척농지에서는 아직 익지도 않은 벼가 누렇게 변해가는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태안군 소원면 영전2리에서 만난 농민 안병준씨(52)는 “벼 끝이 타들어가면서 익은 벼처럼 누렇게 변한 것”이라며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이렇게 피해가 심각한 것은 처음이다. 폭염과 가뭄이 겹쳐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일대는 저수지가 없어 비와 하천물에 의존해 농사를 지어야 하는 곳이라 피해가 더 크다.

안씨의 논은 물기가 모두 말라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마을 주민들이 농업용수로 이용하는 하천도 일찌감치 바닥을 드러냈다. 안씨는 “벌써 논이 망가졌지만 이삭이 나오는 시기인 이달 중으로 논에 물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면 쌀 수확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는 채소 등 밭작물을 키우는 농가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생강밭에서는 잎과 줄기가 말라 누렇게 변했고, 고추도 잎이 시들거나 타들어가고 있었다.





<b>마르고…</b> 갓 파종을 마친 제주시 구좌읍의 한 당근밭에서 지난 7일 분주히 스프링클러가 돌아가고 있지만 농업용수 부족으로 물의 양이 적은 데다 밭의 일부분에만 설치돼 메마른 흙을 충분히 적시지 못하고 있다. 박미라 기자

마르고…?갓 파종을 마친 제주시 구좌읍의 한 당근밭에서 지난 7일 분주히 스프링클러가 돌아가고 있지만 농업용수 부족으로 물의 양이 적은 데다 밭의 일부분에만 설치돼 메마른 흙을 충분히 적시지 못하고 있다. 박미라 기자

◆“살다 살다 이런 난리는 처음…하늘이 원망스럽다”

전국 생산량 40% 차지하는
제주 당근, 파종조차 못해

봄 냉해, 여름엔 고온 이중고
거창 사과농가들 기대 접어

고랭지 채소 생산 40% 감소
양계농가는 “폐사 지켜볼 뿐”

■ 지역특산물도 “최악이다”

쌀이나 일반적인 밭작물 외에 전국 주요 산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인삼 재배 농가가 많은 충남 금산군에서는 폭염으로 인삼 잎이 말라가면서 농민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인삼은 음지식물이어서 기온이 너무 높으면 그 자체로 수확량이 떨어지고 상품성도 나빠진다. 이상남 금산인삼연구회장은 “금산에서 인삼을 재배하는 4000여 농가 중 2000여곳에서 잎이 마르는 심각한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지역 사과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거창의 사과 농가들은 올해 냉해에 폭염 피해까지 겹치면서 하늘을 원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오후 경남 거창군 주상면 한호균씨(62)의 사과농장에서는 햇볕에 타서 썩어 말라가는 일소피해를 입은 사과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 농민들은 지난 4월 사과꽃 개화시기에 갑자기 내린 폭설과 서리로 냉해 피해를 입기도 했다. 한씨는 “수확기를 앞두고 사과가 무거워지면서 잎과 나뭇가지가 처지면 햇볕에 더 노출되기 쉽고 일소피해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살다 살다 이런 난리는 처음으로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제주산 당근은 올해 자칫 품귀 현상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 전국 당근 생산량의 40% 이상을 점하고 있는 제주시 구좌읍 당근 농가들이 날씨 때문에 울상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당근 파종을 마무리할 시기이지만 폭염에 가뭄이 더해지면서 농가의 절반 이상은 파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파종한 농가들도 걱정이다.

이날 구좌읍의 한 당근 농가에서는 스프링클러가 분주히 물을 뿜어대고 있었지만 작열하는 땡볕에 비하면 물의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김성희 구좌읍 산업계장은“대형급수차까지 동원해 물을 공급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재난이 된 폭염](5)타들어간다…문드러진다

■ 고랭지작물 “40% 생산감소”

고랭지 채소 등을 재배하는 농민들에게도 올여름은 유독 힘겹다. 전국 고랭지 배추 출하량의 90%가량을 차지하는 대관령과 태백, 정선 등 강원 주요 생산지에도 고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작황부진이 예상되고 있다.

대관령에서는 7월 중 고랭지 배추 생장에 적합한 기온(15∼28도)을 보인 날이 지난해 26일에서 올해 8일로 줄었다. 태백·정선에서도 적정 기온을 유지한 날은 일주일 정도에 불과했다. 일부 농가에서는 올해 30% 정도의 생산량 감소도 예상하고 있다. 해발 300∼500m 사이 무등산 고지대에서 광주의 대표 특산품으로 꼽히는 ‘무등산 수박’을 재배하는 농가들도 더위와의 전쟁에 한창이다. 광주 북구 금곡동 무등산 수박 재배 하우스에는 폭염을 막기 위해 검은색의 가림막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출하를 앞두고 있지만 수박들은 예년에 비해 크기가 작았다. 무등산 수박은 낮 최고기온이 30도 정도일 때 잘 자라는데 올해는 40도에 가까운 무더위가 이어져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고 한다.

김천중 무등산 수박 작목반장은 “올해 일부 열과(성숙기에 과피가 터지면서 과실이 갈라지는 현상)피해가 발생했고 성장도 더뎌 생산량이 40% 정도 줄 것으로 예상된다”며 “산비탈이어서 끌어다 쓸 물도 없어 하우스 온도를 낮추지도 못하고 있다”며 걱정했다.

■ 축농가 “죽어가는 거 지켜볼 뿐”

농촌지역에서 축산농가의 폭염 피해도 심각하다. 농민들은 매일 자식처럼 돌보다 더위에 지쳐 죽어나가는 닭과 오리 등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실정이다. 폐사를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계속된 폭염에는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이날 강원 화천군 상서면의 한 양계장에서는 더위에 지친 닭들 위로 안개분무가 연신 뿜어져 나왔다. 사육장 온도를 조금이라도 낮춰보려는 궁여지책이다. 하지만 계속 헐떡이던 닭들은 더위를 피해 땅으로 들어가려 사육장 바닥을 파헤치다 힘이 빠져 목을 빼고 푹 주저앉고는 했다. 3600여㎡ 크기의 양계장에서 닭 4만여마리를 사육하는 이기웅씨 “최근 출하를 일주일 앞둔 닭 800마리를 잃었다”고 했다. 이씨는 “닭들은 더워지면 물과 사료를 전혀 먹지 않아 폐사위험이 높아진다”며 “병아리는 큰 문제가 없지만 출하를 앞둔 닭들이 모두 폐사해 양계농가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군에서 육계 9만1500마리를 기르는 정태진씨(59)도 “ 송풍기와 안개분무시설을 설치했고, 면역력 강화를 위해 영양제까지 주고 있지만 한 달 사이 수백마리가 죽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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