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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식약처의 은밀한 업무이관 추진…‘파문’ 확산

작성자
hannong
작성일
2018-01-17 09:38
조회
963


본지, 관련 보고서 단독 입수

생산단계 안전성 조사 농약 허가·원산지 단속 GAP 인증제 업무까지 망라

‘식품안전 업무 식약처 전담’ 논리 깔려…

농업 위축 우려 농업계 “농식품부로 일원화를”

"규제 위주의 식약처가 생산단계까지 관여하면 안전성에만 치우치고 농가소득 증대나 농산물 수급조절 같은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농축산물의 안전관리 업무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대거 회수·흡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관 대상에는 생산단계의 안전성 조사는 물론 농약·동물의약품·사료 허가, 원산지 단속,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제 업무까지 망라돼 있다. 먹거리 안전을 명분으로 농축산물 생산영역에 깊숙이 관여하겠다는 의도다.

19대 대통령선거에서 ○○○ 후보 캠프에 참여했던 정치권 관계자는 15일 “대선을 앞둔 2017년 3월 식약처가 ‘대선공약 수립에 참조하라’며 혁신과제 15개를 담은 식품안전 보고서를 캠프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식약처가 보고서를 우리 (캠프) 말고 다른 캠프에도 전달한 것으로 안다”며 “(당시에는) 당내 경선이 한창이라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대선 이후 보고서 내용이 차근차근 현실화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식의약 안전분야 혁신과제’라는 35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관리 방안이 담겨 있다. 작성 기관이나 작성자가 나와 있지 않지만, 식약처가 작성했음을 바로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큰 틀은 ‘빈틈없는 안전보장 체계 완성’이지만, 밑바탕에는 식품안전 업무를 식약처가 전담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렸다.

식약처는 보고서에서 농축산물의 안전관리 패러다임을 ‘진흥’에서 ‘안전’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안전관리 업무를 농식품부·해양수산부 같은 산업진흥 부처에서 분리할 것을 주장했다. 생산단계의 안전관리 업무를 흡수하겠다는 의미다.

식약처 계획대로라면 농식품부와 소속기관, 농촌진흥청의 업무영역은 대폭 축소된다. 농진청의 농약,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동물의약품 업무와 조직이 식약처로 넘어갈 수 있다. 안전성 조사와 인증제 관리, 원산지 단속을 담당하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아예 식약처 소속 기관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농식품부로선 조직 일부는 물론 사료관리법 등 관련 법령도 식약처에 넘겨줘야 한다.

농업계는 생산단계에서 규제 중심의 식약처 입김이 강해지면 농축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가령 집유 업무가 식약처 소관으로 바뀌면 원유가격이나 쿼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낙농가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업무영역 조정은 부처 이기주의를 떠나 농가, 나아가 농업계의 발전 차원에서 심사숙고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공론화될 정부조직 개편 논의에서 식품안전 소관 부처를 농식품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식품안전은 원재료가 나오는 사육·재배 단계부터 생산부처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농식품부 외청으로 식품안전청(가칭) 설치를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농가소득 증대·수급조절 등 뒷전 우려

농장·도축장·집유장 업무에 인증제 업무까지 가져갈 계획

지난해 8월 떠들썩했던 살충제 성분 검출 달걀 사태 3월 전에 쓰여진 보고서에 나와

사전에 파악하고도 방치 ‘의혹’ 업무 일원화 오래전 추진 방증

식약처, 기본적으로 규제 중시 농업 다양한 측면 못 볼 가능성

식품안전 업무, 생산부처로 일원화하는 세계적인 추세 역행도 문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산단계의 농축산물 안전관리 업무까지 직접 수행하겠다는 계획을 수립·추진해 농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규제 위주의 식약처가 생산단계까지 관여하면 안전성에만 치우치고 농가소득 증대나 농산물 수급조절 같은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 식약처 구상은=농림축산식품부와 식약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업무영역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농업계는 ‘농장에서 식탁까지’란 국제 추세에 맞게 농식품부 중심으로 일원화할 것을 바랐고, 식약처는 식품안전 컨트롤타워(총괄 조정) 기능을 비농업 부처가 담당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식약처가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생산단계의 안전성 조사는 물론 농약·동물의약품·사료 허가, 원산지 단속,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제 업무까지 대거 이관을 추진하면서 관련 논의는 새로운 양상으로 번질 조짐이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식의약 안전분야 혁신과제’라는 보고서는 식약처가 식품안전 업무 일원화를 은밀하게 추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식약처는 우선 생산부처에 위탁한 축산물 안전관리 업무를 회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현재 생산·유통·가공·소비 단계에 이르는 축산물 안전관리 업무는 모두 식약처 소관이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정부가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의 축산물위생관리법을 통째로 식약처로 넘겼기 때문이다. 다만 농장·도축장·집유장 업무는 위탁 방식을 통해 아직 농식품부가 수행하고 있다. 식약처 계획은 위탁 업무를 회수해 축산물 생산과정까지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이미 이런 내용의 축산물위생관리법 개정안 2건이 계류 중이다. 2건 모두 식약처를 관할하는 복지위 소속 의원이 발의했다.

식약처는 원산지 단속 업무와 축산물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해썹·HACCP), GAP 같은 인증제 업무도 가져가겠다고 명시했다. 농식품 안전성과 밀접한 제도들이다. 식약처는 보고서에서 “원산지나 인증제는 식품의 품질개선보다는 사전 안전관리에 속하는 업무”라며 “소비자 관점의 안전체계를 구축하려면 식약처에서 수행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식약처는 또 인체 유해물질 관리 강화를 이유로 농약·동물의약품·사료 관련 잔류기준 설정 업무(식약처)와 허가권한(농식품부)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식품부가 가진 허가권을 달라는 의미다.

◆ 식약처, 오래전부터 식품안전 업무 일원화 준비한 듯=식약처가 생산단계의 농축산물 안전관리 업무를 가져가겠다며 내세운 논리는 ‘소비자 관점의 안전체계 구축’이다. 생산부처가 관리하면 온정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산란계와 달걀에 대한 살충제 살포 사례 발생’을 예로 들었다. 식약처는 보고서에서 “양계장 등 생산시설의 열악한 위생상태,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등 생산단계의 농축산물에 대한 국민 불안이 증대됐다”고 했다. 자신들이 직접 생산단계에 개입하면 농축산물의 위생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식약처가 식품안전 업무 일원화를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추진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지난해 국내를 들썩이게 했던 ‘살충제 성분 검출 달걀 사태’가 8월에 발생했지만, 식약처 보고서는 이보다 5개월 앞선 3월에 각 대선캠프에 전달됐다. 식약처가 살충제 사태를 사전에 파악하고도 방치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실제 식약처는 살충제 사태 이후 농식품부에 위탁한 축산물 생산단계의 안전관리 업무를 회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보고서에 등장한 ‘식용란 선별포장업 신설’과 ‘세척달걀 냉장유통 의무화’가 살충제 사태 직후 식약처 고시를 통해 실현단계에 와 있다.

◆ 농업부처 일원화가 바람직=농업계는 식약처 구상에 대해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식약처는 기본적으로 규제를 중시하기 때문에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대표적인 게 농약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PLS·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이다. 식약처 주장대로 PLS가 내년부터 전면 시행되면 해당 작물에 등록되지 않아 잔류허용 기준이 미설정된 농약은 일률적으로 1㎏당 0.01㎎ 이하가 된다. 사실상 불검출 수준이 돼야 제재를 피할 수 있는 셈이다. 농정당국은 PLS가 전면 시행되면 잔류농약 안전성 조사 부적합률이 2015년 기준 1.7%에서 6%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잔류농약 담당부처인 식약처는 내년 전면 시행에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생산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식약처는 이를 단속·발표하는 데 그칠 뿐 이후 발생하는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1995년 소골 탄저병 사태 당시 보건복지부는 소골을 먹은 사람에게서 탄저병이 발생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며 “축산 현장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부족한 식약처가 생산단계까지 손을 뻗친다면 이런 문제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식약처 구상은 식품안전 업무가 생산부처로 일원화하는 추세와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은 2001년 광우병을 계기로 조직개편을 단행, 연방보건부에서 담당하던 식품과 도축장, 수입식품 검역 업무를 연방식품농림부로 이관했다. 이후 연방식품농림부를 연방소비자보호식품농업부(이하 농업부)로 개편해 식품안전관리 체계를 일원화했다. 어느 단계에서 식품안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한 역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생산부처에 외청을 두고 농업 관련 부처로 식품 업무를 일원화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다. 캐나다의 농업농식품부 산하 식품검사청, 독일의 농업부 산하 연방소비자보호식품안전청, 덴마크의 환경식품부 산하 수의식품청, 스웨덴의 농촌부 산하 국립식품청, 핀란드의 농림부 산하 식품안전청이 대표적이다.

우리 국회에도 이런 법안이 발의돼 있다.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은 식약처를 폐지한 뒤 식품안전 업무를 농식품부로 이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지난해 9월 발의했다. 황 의원은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식품안전 업무를 단속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고, 생산부터 유통·가공에 이르는 모든 위생·안전 관리 업무를 생산부처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영 기자 supply@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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