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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농촌어르신 전화 한통 ‘따르릉’ …행복콜버스 집 앞에 ‘부르릉’

작성자
hannong
작성일
2019-05-13 09:24
조회
137

승객은 대부분 어르신이다. 그렇다보니 승하차를 돕는 것이 콜버스 기사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다.

[현장 속으로, 기자체험 25시] 농민신문 양석훈 기자가 간다 (15)행복콜버스 도우미

완주 주민들 꾸린 동상안전협동조합,

농촌형 교통모델사업 위탁받아 소양면 등 4개 면에서 콜버스 운행

하루 평균 120콜…요금은 500원

기사, 이용객 사정 속속들이 파악 거동 불편한 어르신 승하차 돕고 짐꾼 노릇에 간혹 장보기도 대신

오가는 동안엔 말벗 노릇 ‘톡톡’ 부모 모시는 마음가짐, 승객 큰 만족인

시에 사는 기자가 아직 차를 안 산 이유 중 하나는 지하철과 버스가 워낙 잘돼 있어서다. 택시도 많다. 하지만 농촌으로 취재를 가면 자가용 생각이 간절해진다. 지하철이 있기는커녕 시내버스도 몇시간에 한번꼴로 다닌다. 그나마 구석구석까지는 닿지도 않는다. 아직 팔팔한 기자 사정은 나은 편이다. 걷기조차 버거운 농촌어르신들에게는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부터 고역이다. 그런데 이런 농촌주민들의 자가용 노릇을 하는 게 있다.

정부가 2014년 시작한 ‘농촌형 교통모델사업’이다. 택시나 승합차를 통해 저렴하게 농촌주민들을 수송해주는 사업이다.

전북 완주에서는 ‘행복콜버스’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완주 주민들로 꾸려진 ‘동상안전협동조합’이 사업을 위탁받아 동상면·소양면·구이면·상관면에서 콜버스(승합차)를 운행하는데 주민들 반응이 뜨겁다. 최근엔 4개 면을 합쳐 하루 평균 120콜이 들어온다. 기자가 그중 소양면 콜버스의 하루를 쫓아봤다. ‘버스 운전면허증’ 등 자격이 필요한 운전은 기사인 박성주 동상안전협동조합 대표에게 맡기고 기자는 조수를 했다.



짐을 바리바리 든 농촌주민을 태울 때면 기사는 짐꾼이 되기도 한다.

어르신들 자가용 노릇 톡톡

완주 행복콜버스는 면마다 운행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소양면은 셔틀형과 콜형이 섞인 복합형이다. 오전 7~8시에는 콜을 받는다. 콜을 부른 승객을 태우고 옛 소양면사무소 주차장에 있는 콜버스 전용 주차장에 내려준다. 오전 8~10시에는 정해진 노선을 돈다. 시내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구석구석을 들른다. 다시 오전 10시~오후 8시에는 콜을 받는다. 요금은 500원이다.

“김경덕 할머니네요. 할아버지랑 병원 가시나 봐요. 그 집 할아버지 당이 높거든요.”

4월11일 오전 7시40분. 첫 콜이 왔다. 콜버스 경력 5년차인 박 대표는 전화번호만 보고도 누가, 무슨 목적으로 콜버스를 이용하려는지 아는 듯했다.

정류장을 출발한 콜버스는 금세 바닥이 울퉁불퉁한 길로 들어섰다. 10분 남짓 달리자 김 할머니(80)와 남영현 할아버지(85)가 보였다. 박 대표가 얼른 차에서 내렸다. 콜버스 이용승객 대부분은 승합차에 오르내리는 것조차 어려운 어르신들이다. 그래서 콜버스 기사가 어르신들을 부축해 태우고, 어르신들보다 먼저 내려 하차를 돕는다.

박 대표를 따라 내려 남 할아버지의 팔을 붙들었다. 남 할아버지는 부축을 받고서도 승합차에 오르는 데 하세월이다. 하물며 시내버스 타는 일은 오죽할까. 콜버스는 집 근처로 오지만 시내버스를 타려면 정류장이 있는 마을 어귀까지 한참 걸어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거기엔 승차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자니 잘 잡히지 않을뿐더러 주머니 사정도 부담스럽다.

차에 올라 한숨 돌린 김 할머니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남 할아버지가 이렇게 아픈 지는 한참 됐다고 했다. 요즘엔 자신도 아파서 큰일이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병원이 멀어 힘들다. 한번은 앰뷸런스를 불렀는데 위급 환자가 아니어서 못 탄 적도 있다. 그런 할머니에게 부르면 달려오는 콜버스는 참 고마운 존재다.

“그래도 이게 생겨서 편해. 어쩔 땐 하루 두번도 타. 내 자가용이야.”

소양면으로 되돌아가는 동안 박 대표는 어르신들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라도 할세라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어르신들이 쉽게 감기에 드는 탓에 운행 중에는 웬만해선 창문도 열지 않는 게 박 대표의 철칙. 그렇다보니 어르신들에게 콜버스가 자가용 부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한 어르신이 콜버스 안에서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은 취재기자.

어르신들 말벗하며 위안 선사

차 안에서 쭈뼛거리는 기자가 안타까웠는지 박 대표가 승객에게 말이라도 붙여보라고 권했다. 어르신들이 적적하지 않도록 말동무가 돼주는 것도 콜버스 기사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었다. 그 일이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응암마을에서 홍정순 할머니(89)를 태웠을 때였다. 몇번이나 뜸들이다 한마디 건넸다.

“할머니 편찮은 데는 없으세요?”

나름대로 고심해 내뱉은 말이었는데 웬걸, 대화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늙은이가 안 아픈 데가 어딨어. 늙었응게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어. 밥만 축내고.”

급기야 홍 할머니 입에서 “가끔 살기도 싫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가슴이 철렁, 말문이 막혔다. 그때 차 안에 흐르는 정적을 감지했는지 박 대표가 끼어들었다.

“어머니, 오늘은 뭐더러 나가셔요?”

“맨날 노인정(치매센터) 가지. 뻔히 알면서 뭐더러 물어볼꼬.”

“노인정 간다는 분이 왜 이렇게 이뻐.”

“늙었는디 뭐 이뻐.”

그렇게 말하면서도 할머니 입꼬리는 씩 올라갔다. 박 대표가 운전 솜씨만큼이나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대화를 이끌자 할머니는 치매센터에서 요즘 듣는 글짓기수업부터 다가오는 주말에 열릴 예정 벚꽃잔치까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기자님도 오셔. 음식은 이장네서 다 해가꼬 온게. 오면 떡이야, 고기야, 밥이야 실컷 드려.”

혼자 산다는 할머니에게 말벗이라고 해봐야 텔레비전이 전부였을 터. 그런 할머니에게 사근사근 말을 건네는 박 대표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래서인지 내릴 때 할머니 표정이 전보다 한결 밝아보였다. 콜버스가 어르신들에게 작은 위안마저 선사한 셈. ‘행복콜버스’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보람 연료 삼아 달린다

오후 2시쯤에는 상리마을에서 구금례 할머니(78)가 아들과 함께 탔다. 할머니는 몸집만 한 개사료를 안은 채였다. 콜버스가 더는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다란 길에 이르렀을 때 박 대표가 “내려서 짐 들어드리세요”라고 귀띔했다. 골목마다 편의점과 마트가 즐비한 도시와 달리 농촌에선 장을 보려면 멀리 나가야 한다. 게다가 교통도 불편해서 한번 나갈 때 필요한 물건을 바리바리 사들고 오는 이들이 많다. 그런 승객을 태울 때면 기사는 짐꾼이 되기도 한다고.

박 대표 말대로 사료를 품에 안았다. 젊은이한테는 별것 아니어도 허리며 무릎이며 성한 곳 하나 없는 어르신에겐 퍽 무거웠을 게 분명했다. 고작 몇미터 옮겨드렸을 뿐인데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일과가 끝날 무렵에는 조금 특별한 콜이 하나 들어왔다. 강정례 할머니(79)였다. 강 할머니는 친정아버지 제사 때문에 그저께 서울에서 내려온 동생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며 대신 장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박 대표는 흔쾌히 수락했다. 가끔 이처럼 농자재나 찬거리 심부름을 하기도 한단다. 문제는 차 안에 이미 승객들이 타 있던 것이었다. 마트로 가려면 차를 돌려야 했다. 박 대표가 그래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그랬더니 다소 살벌한 대답이 돌아왔다.

“되고 말고. 이 세상서 좋은 일 많이 한께 저 세상도 좋은 데로 갈 거요.”

그 말에는 자신들의 두발이 돼줘서 고맙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박 대표는 기사라기보다는 부모 모시는 자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고 했다. 승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 있다고도 했다. 이렇게 ‘과격한’ 감사 인사를 받은 덕분일까. 하루종일 시골마을 곳곳을 누비느라 지쳤을 법한데도 마트로 향하는 콜버스의 엔진소리가 유독 경쾌하게 들렸다.

완주=양석훈,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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