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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민신문)[창간기획] 오르면 ‘금배추·금딸기’ 보도로 지갑 닫게 하고...폭락 땐 ‘모르쇠’

작성자
hannong
작성일
2022-04-12 09:04
조회
28

물가주범을 잡아라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김관태 기자]

‘물가 불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인플레이션 문제가 국가적 관심사로 떠오른다. 각종 물가지수는 ‘역대 최고’를 향하고, 주요 언론들은 물가 상승 요인을 농축수산물로 몰아가며, ‘밥상물가’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코로나 발생 이전, 0%대의 저물가시대에서도 농축수산물은 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력 후보군에 들었다. 그러나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돈의 흐름을 조절하는 통화(금리)·재정 정책, 가계소비 구매력에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정책 등의 요인과 소비 심리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그럼에도 유독 ‘농산물이 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고 단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여기에서부터 고민은 시작된다. 왜 소비자들은 농산물이 항상 비싸다고 인식하는 걸까.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을 가능성은 없을까. 물가지수는 문제없나. 물음표를 쫓아가봤다.




배추 가격이 다이아몬드 가격이라고?


배추(농산물)가 갑자기 ‘금’이나 ‘다이아몬드’로 몸값이 오를 때가 있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거나 오를 조짐이 보이기라도 하면 ‘금배추’, ‘금딸기’라며 언론이 호들갑을 떨 때다. 2020년 여름철 유례가 없는 50일이 넘는 장마로 배추 산지의 피해가 컸던 당시, 일부 언론은 “배추값, 금 아니라 다이아몬드”라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내걸었다. “배추(원재료) 가격이 비싸니 저렴한 포장김치 제품(가공품)을 사서 먹는 게 싸다”는 설명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원재료의 본질적인 특성인 수급 변동이 심하고 예기치 못한 외부 변수가 많다는 점은 농산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석유나 천연가스 등 부존자원의 전유물로 받아들이면서, 마치 농산물만 상대적으로 가격 등락이 심해 물가 불안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올해 3월 소비자물가지수가 발표된 4월 5일, 한 언론사는 “깻잎도 사치인 봄”이라는 기사 제목을 달았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물가 상승률이 약 10년 만에 4%대로 치솟았다는 것인데, 가격 상승폭이 큰 농산물 품목인 ‘깻잎’을 제목으로 내세웠다. 역대 최고의 물가 상승률이 농산물에 기인한 것 같은 뉘앙스를 짙게 풍겨댄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지수 자료에서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가 3.3% 올랐다는 내용은 주목받지 못했다. 근원물가지수는 농산물과 석유류 등을 뺀 물가지수로,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통계다. 언론 보도에서는 엽채류 공급 물량이 왜 줄었는지, 언제 회복되는지 알 수 없다. 엽채류 생산에 드는 원부자재 가격 인상, 그리고 인력난 부족으로 재배면적을 줄일 수밖에 없는 영농 여건도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소비 심리에 악영향을 끼치는 언론 보도 사례들은 비일비재하다. 한 예로, 올해 1월 수도권 중고등학교 졸업식 수요가 몰려 꽃값이 3일 정도 폭등하자 많은 언론매체들이 가격 폭등 기사를 쏟아냈지만, 이후 열흘도 채 되지 않아 평년보다 한참 하락한 꽃값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화훼 농가 상황을 후속 보도한 매체는 거의 없었다.

배추가 다이아몬드에 비유됐던 2020년도 마찬가지였다. 늦여름 가격이 뛰었던 배추는 그해 12월 도매시장 경매가가 10kg포기 1망에 2000~3000원대까지 폭락했지만, 이를 보도하는 언론사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2010년 '배추파동'도 그랬다. 많은 언론들이 국가 비상 사태인 것처럼 앞다퉈 보도 경쟁을 벌였는데, 당시 배추 가격이 ‘폭등’에서 ‘폭락’하는 데 걸린 시간은 보름 정도에 불과했다.

이처럼 가격 상승에만 초점을 맞춘 자극적인 언론 보도 행태는 농산물이 물가주범으로 등극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아가 소비자와 농민을 구분 짓고, 농촌을 더욱 고립시키는 인식을 고착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경북 영덕에서 농사를 짓는 김현상 씨는 농산물 가격이 오를 때마다 언론이 호들갑을 떤다고 말했다. “배추 값 한 포기에 만 원 한다고 합시다. 커피 두 잔 값이에요. 잠시 올랐다가 떨어지는 농산물을 갖고 왜 자꾸 문제를 삼는지 모르겠어요. 마치 농산물은 값이 오르면 큰 일이 나는 것처럼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안타까워요. 그러니 농사지으러 농촌으로 오지도 않을뿐더러 농촌에 오더라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거죠.”

지난해보다 70% 가격이 떨어진 농산물 품목인 양파 생산 농민 남종우 씨의 얘기도 다르지 않다. “양파 산지폐기를 한다는 장소로 가려고 택시를 탔어요. 택시기사 분이 양파 값이 무슨 문제가 있냐고 그러더라고요. 왜 산지폐기를 하는 거냐고 묻는데, 심정이 착잡하더라고요. 가격이 오를 때만 언론에서 농산물 얘기를 쏟아내니 한 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어떤 심정인지, 농촌이 어떤 상황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잠정 결론 하나, 자극적인 언론 보도가 물가 불안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고 있다.



‘물가주범’은 농산물? 커지는 의심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농산물 가격과 물가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한국농어민신문은 수도권 등 소비자를 대상으로 ‘농산물 가격과 소비자 물가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설문에 응답한 146명의 소비자들은 농산물 가격이 물가 상승과 관련이 있다고 봤다.

설문조사에서 ‘농산물 값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크다’ 30.8%(45명), ‘크다’ 53.4%(78명)로 10명 중 8명 이상이 농산물 값과 소비자물가와의 상관관계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8.4%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의 이 같은 인식은 농산물 가격 상승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보도 경향 때문은 아닐까. 설문조사에서 ‘신문·방송 등을 통해 농산물 값 폭등 보도를 자주 접한다고 느끼는지’를 물었다. 응답자 146명 중 절반에 가까운 47.3%(69명)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매우 그렇다’는 응답도 19.9%(28명)에 달했다. 67.2%의 소비자들이 언론에서 ‘농산물 값 폭등’ 보도가 자주 나온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이다’는 25.3%(37명), ‘그렇지 않다’는 6.2%(9명), ‘매우 그렇지 않다’는 1.4%(2명)에 불과했다.

특히 ‘농산물 값 상승 보도를 접한 후 농산물 구매를 줄이느냐’는 질문에는 72.6%(106명)이 ‘구매를 줄이는 편이다’라고 응답했다. 농산물 값 폭등 보도가 실제 구매 축소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농산물 값 상승이 농가소득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인식했다. 농산물 값이 상승하면 농가 소득이 증가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11%(16명), ‘매우 그렇다’는 2.7%(4명)에 불과했다. 반면 ‘그렇지 않다’가 60.3%(88명)로 가장 많았고, ‘매우 그렇지 않다’도 10.3%(15명)를 차지했다.

한국은행이 3월 11~18일 전국 도시 25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3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도 농축수산물이 물가 상승을 이끄는 주요 후보군에 포함돼 있었다.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주요 품목의 응답 비중을 보면 석유류 제품(83.7%)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농축수산물(32.6%)이 뒤를 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유류 제품이 지난 조사 때보다 더 두드러진 측면이 있지만, 공공요금(31.5%), 공업제품(20.6%), 집세(13.0%) 보다 농축수산물이 물가 상승을 크게 주도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저임금으로 인건비를 아껴 기업 경쟁력을 높였던 시대, 국가 시책은 저임금 구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물가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농산물 가격을 일정 수준에서 통제해 왔다. 신선 농산물이 주요 먹거리였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가공식품과 수입 농산물이 크게 증가하며 우리의 ‘밥상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게다가 외식과 배달 수요도 급증하면서 소비자물가에 차지하는 가공식품 비중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공식품 소비자물가지수 비중의 경우(2020년 100기준) 2010년 79, 2011년 83, 2012년 87, 2013년 90, 2014년 93, 2015년 94, 2016년 95, 2017년 95, 2018년 97, 2019년 99, 2020년 100, 2021년 102다. 이처럼 지난 10년여 간 가공식품의 가계 소비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원재료 소비보다 가공품 소비 빈도가 늘어났거나 가공품 가격이 증가한 영향이다.

반면 농산물의 경우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1000) 기준으로 1980년 315, 1990년 189.5, 2000년 106.5, 2010년 77.6, 2015년 77.9, 2017년 77.1, 2020년 83.8로 크게 감소한 양상이다. 가격 역시 등락만 반복했을 뿐 평균 수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잠정 결론 둘, 물가 상승의 주범은 농산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잘못 설계된 물가지수에 농축수산물 가중치 부풀려져 ‘억울’






착시현상으로 생긴 오해



소비자들은 왜 공산품이나 집값보다 농산물 가격 상승에 더 민감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구입 빈도가 잦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물가지표인 월별 소비자물가지수를 보자. 가구가 한 달간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나타낸 통계로, 기준시점을 100으로 놓고 비교시점 물가의 높고 낮은 정도를 보여준다.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것이지 가격의 절대치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서, 또 다른 핵심 포인트 중 하나는 가구당 월 소비지출(약 253만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품목별 가중치로 구분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과와 TV가 있다. 동일 기준으로 가격 비교가 어려운 두 품목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 즉 가중치는 2.7로 똑같다. 만약 사과 가격이 10% 오르고, TV 가격이 10% 내리면 소비자물가지수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십 년에 한 번 정도 구입하는 TV의 가격 변동은 매달 반영되기 어렵지만, 농산물은 그렇지 않다. 매달 나오는 품목이 다르고, 시기마다 출하하는 물량, 지역, 출하시점도 각각 다르다. 게다가 소비지까지 연결하는 다양한 유통채널별 수수료 또는 마진들이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이렇다보니 TV보다 구입 빈도가 잦은 사과(농산물)의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들은 소비자물가가 올랐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지수지표 외에도 소비자의 주관에 따라 체감물가는 차이를 보인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하락한 품목보다 오른 품목이나 자기 자신과 관련 있는 몇 개 품목의 가격 변동에 초점을 두고 물가가 상승했다고 인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농산물 가격 상승을 중심으로, 학생이 많은 가구는 교육비 상승을 중심으로 체감 물가를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개인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구입했던 가격대가 구매 기준의 잣대로 작용한다는 점도 공산품·서비스 상품과 다른 부분이다. 애호박 1개 가격을 1000원 주고 샀다면, 다음에도 이 가격대를 적정가격으로 인식해 그 이상의 가격일 경우 밥상물가가 올랐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가지표와 체감물가의 괴리를 좁히지 못하는 문제는 해묵은 과제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당국은 표본을 개편하거나 조사방법을 개선하는 등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지만, 물가지수가 통계 수치인만큼 실물 경제를 100%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이를 해석하는 데 있어 착시나 오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농축수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다. 2020년 기준 소비자물가지수를 조사하는 전체 458개 품목 중 농축수산물은 78개 품목으로, 이를 모두 합한 가중치는 83.8다. 전체 가중치(총합 1000)의 8.4%에 불과할 정도다. 이 수치는 지난해 12월 개편된 것인데, 개편 이전 농축수산물 가중치는 77.1(2017년)로 더 작았다. 전체 비중은 극히 일부인데, 공산품과 달리 가격 변동이 잦다보니 물가지수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게 되는 것이다.

잠정 결론 셋, 농산물이 물가지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부풀려져 있다.




자양강장제 ‘박○○’의 비밀


현 기획재정부의 모태였던 경제기획원에서 소비자물가 관련 사무를 한 적이 있는,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인 이준원 공주대 초빙교수는 소비자물가지수에 대해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자양강장제 박○○가 소비자물가지수 조사품목에 포함돼 있어 제조업체가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올리지 못했어요. 바로 물가지수에 반영되다보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신제품을 만들었어요. 1990년대 초 자양강장제 ‘박○○F’로요. 공산품과 서비스 품목은 가격변동을 정확히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공산품은 신제품 명목으로 가격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 가격변동이 없는 것으로 처리되기 쉬워요.”

공산품이 물가당국의 눈을 피해 제품가격을 올리는 사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농산물만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몰리는 꼴이다.

그는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의 경우 품질 향상 측면을 통계에 정확히 반영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농산물도 품질 측면을 소비자물가지수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30년 전과 지금, 농산물을 보면 품질과 안전 측면에서 우수해졌고 당도도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자연히 농민들의 노력이나 인건비, 비용 등이 올라갔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농산물 품질을 반영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적어도 이 부분을 제대로 알리는 노력이라도 할 필요가 있어요. 어떤 품목을 소비자물가에 반영시키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정확히 소비자물가에 반영시키느냐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농산물이 물가 상승 주범이라는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농산물에 매겨진 가중치 비중을 낮출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물가지수에 국민 대부분이 물가 상승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주택가격 변동이 반영돼야 한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가 주택을 제외한 전·월세만 소비자물가지수에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른 집세 가중치는 98.3이다. 일본의 경우 자가 주택 가격 변동을 귀속임대료 형식으로 소비자물가지수에 반영하고 있어 귀속임대료와 월세를 합한 일본 집세 가중치 비중은 전체(1000)에서 183.3(귀속임대료가 158)에 달한다. 우리의 경우도 자가 주택 가격 변동이 반영될 경우 상대적으로 농산물 가중치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산물 가중치 비중이 낮아지면, 농산물이 ‘밥상물가’의 주범으로 몰리는 일이 지금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준원 초빙교수는 “우리도 일본처럼 주택가격 변동을 귀속임대료 방식으로 소비자물가 조사품목에 추가하면 기존의 458개 품목의 가중치는 20% 감소한다”며 “농산물 가중치도 8.4%에서 6.8% 수준으로 줄게 된다”고 말했다.

잠정 결론 넷,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농산물 가중치가 잘못 설계돼 있다.




농민과 농산물은 억울하다


앞선 잠정 결론을 종합해 보면 농산물은 물가 상승의 주범이 아니다.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와 잘못된 물가지수 설계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농민들은 농산물 값이 급등하면 수입산을 들여오는 정부 시책에 애를 태우고 있다. 그 뿐인가. 소비 진작과 과한 장바구니 물가 부담 경감을 명분으로 정부가 대형마트에 ‘소비 할인 쿠폰’ 예산을 지원해주는 등 엉뚱한 처방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다보니 ‘농식품부는 소비자보호부’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 지 꽤 됐다.

수십 년 동안 배추를 재배해 온 김시갑 강원지역 무·배추 공동출하회 연합회장은 정부가 농산물 값을 인위적으로 누른다고 지적했다.

“배추가격 폭락 피해는 농민들이 감수해야 하는데, 가격이 오를 때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면서 가격을 누르고 있어요. 자재비와 인건비 등 생산비가 갈수록 올라가는 상황에서 좋은 가격이 나와 줘야 지속가능한 영농 여건이 만들어질 수 있잖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소비자 물가 안정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시장에 수시로 개입하고 있어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농산물 (소비자)가격 안정에만 초점을 맞춘 물가 정책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난 2월 한국농어민신문이 개최한 역대 농정책임자 간담회에 참석한 전직 농식품부 관료들의 입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간담회에서 여인홍 전 농식품부 차관은 “농산물 가격은 수급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수급을 통해 풀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가격을 조정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을 보는 인식이 계속 어긋나는 이유”라면서 “수급 문제는 공급과 수요에 따라 접점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열흘 또는 한 달 등 시간이 가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자꾸 개입하려고 하니 외부 변수들이 생기고,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학수 전 농식품부 차관도 “정부의 물가관리제도는 그동안 농식품부가 물가 당국에 이의를 제기해도 반영이 안 되는 고질적인 문제다. 언론도 부추기고 있는 측면이 있다. 농산물은 기후변화에 민감하고 계절성이 있어 공산품과 달리 가격이 올랐다가도 내려가기도 하는 특성이 있다”며 “대체 가능한 농산물 품목의 경우에는 전체 물가관리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학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은 소비자 물가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한다고 하는데, 생산 농민들의 읍소는 갈수록 처연해지고 빈번한 가격 폭락에 농사를 포기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하면 그 피해는 농가가 오로지 짊어져야 합니다. 법에 보장돼 있는 쌀 자동격리조차도 재정 당국의 반대와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이 오를 때는 수입 물량을 들여와 농민들을 절망케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언론과 소비자들도 농산물을 물가 주범으로 인식하고 있어 농민들은 사면초가에 처해있어요.”

언론 스스로가 농산물 가격 위주의 자극적인 보도 행태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도 많다. 농촌사회학을 연구하는 정은정 씨의 얘기다.

“농산물과 같은 1차 생산물은 계절적 요인으로도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데, 한 품목만 찍어서 ‘얼마나 올랐다’라고 해버리니 가격이 올랐다는 보도만 계속 나오고 있어요. 고추가 올랐을 땐 고추가 올랐다고, 깻잎이 오르면 깻잎이 올랐다고 말하는 것이죠. 언론들이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의 평균값을 생각하지 않고 어떤 특정 품목의 가격만 집어내는 부분은 각성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배춧값이 크게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고춧가루 가격은 안정적이었어요. 김장을 한다고 하면 전체 비용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는 얘기죠.”

그는 “앞으로도 걱정이다. 인수위에서 물가 안정을 제1순위로 둔다고 하는데, 가장 손쉽게 쥐어짤 수 있는 데가 농업일 확률이 높다”면서 “만약 물가 안정 포인트를 1차 농산물로 둔다면 그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학구 회장은 “축산물 가격이 높으면 ‘금겹살’이라고 하고, 상추 가격이 높으면 상추에 고기를 싸서 먹는 게 아니라 고기에 상추를 싸서 먹는다는 식의 자극적이고 희화화하는 보도 행태가 갈수록 빈도가 잦아지고 수위도 강해지고 있다”면서 “농산물을 물가주범으로 모는 이런 언론보도들은 소비자의 인식과 실제 농산물 소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과 정보를 기반으로 신중히 접근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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