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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민신문)직장 잃고, 병 얻고…졸지에 백수된 ‘청년후계농’ 사연

작성자
hannong
작성일
2021-06-16 09:57
조회
95

하병우(34) 씨는 5살, 3살 아이를 둔 아버지다. 결혼 후 고추농사를 짓는 처가에서 틈틈이 농사일을 도왔다. 장인어른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직업은 공무원인데, 그 공무원보다 더 좋은 직업이 농업’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농업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장인어른 덕분에 농업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가장으로서 직업을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최장 3년간 월 최대 100만원의 영농정착지원금과 창업자금(최대 3억원, 금리 2%) 대출이 가능하다는 ‘청년후계농 영농정착지원사업’ 얘기를 듣고 용기를 냈다. 지난 4월, ‘청년후계농’에 선발됐다. 하지만 새로운 출발을 꿈꾸던 그는 지금 극심한 스트레스로 ‘구안와사(안면신경마비)’가 와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두 달 새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10년 장기임대에 지상권 설정 요구까지…땅주인이 해주겠나

청년후계농으로 영농정착지원금을 받으려면 우선 농지 등 영농기반을 마련해 농업경영체 등록을 해야 한다. 40시간의 필수교육 등 의무교육 과정도 이수해야 한다. 그리고 한 달 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격이 박탈된다. 그도 교육을 받으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생활을 위해서는 하루가 급했다.

발품을 팔아 1200평 임차농지를 구하고, 그 위에 설치된 6연동 하우스를 구입하기로 했다. 쓸만한 농지는 평당 30만~40만원에 달해, 애당초 농지 구매는 언감생심이었다. 1000평만 산다고 해도 3억이 훌쩍 넘는데, 대출 받아 땅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임차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땅주인에게 10년 이상 장기임대차계약서를 받아야했다. 3년도 받기 어려운데, 10년이라니. 꺼리는 땅주인을 어렵사리 설득해 계약서를 체결하고, 하우스 주인과도 매매계약을 했다. 감정평가원으로부터 감정평가(1억4500만원)도 받았다.

하지만, 대출자금은 나오지 않았다. 농협에서 땅주인에게 10년의 지상권 설정 계약을 추가로 받아오라고 했다. 지상권은 타인의 토지 위에 건물(공작물)이나 수목 등을 소유하기 위해 그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로, 은행이 지상권을 설정하게 되면 토지 소유자는 앞으로 그 기간 동안 토지 사용에 제약을 받게 된다.

“어느 땅주인이 그걸 써주겠습니까. 생판 모르는 남한테. 결국 다른 담보가 없으면 5000만원 밖에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이럴거면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를 해주든가. 그럼 돈을 모아서 하든지, 아예 시작을 안했을 텐데. 직장을 그만뒀으니 신용대출을 받을 수도 없고…”

담보가 부족한 청년농업인을 위해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이하 농신보) 보증비율을 90%에서 95%까지 확대했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농식품부 정책 홍보문구에나 있는 이야기였다. 올해 고추농사를 시작하려면 7월 중순까지는 어떻게든 정리가 돼야 하는데, 뜻하지 않게 백수가 되어 걸어두었던 계약금마저 날릴 위기에 처한 그는 그렇게 생병이 났다.

4년 전부터 850평 규모로 애호박 농사를 짓다가 지난해 신규후계농에 선정된 B씨(44)도 같은 이유로 자금 대출을 받지 못했다. B씨에게는 대출담당자가 올해부터 지상권 설정기간이 15년에서 30년으로 늘었다며, 30년 지상권을 설정해 오라고 요구했다 한다.

“규모 좀 키워본다고 후계농 신청해서 작년 3월부터 10월까지 100시간 교육 듣고, 땅 1800평을 임대해서 시설을 지으려고 했죠. 처음엔 11년 임차계약만 있으면 된다더니, 땅주인한테 30년 지상권을 받아오라는 거에요. 땅주인은 당연히 안된다고 하지. 그래서 계약이 파기됐어요. 그러고 난 다음엔 구하는 땅마다 문제가 돼서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쉬고 있어요.”

지난해 신규후계농에 지정돼 자금 지원을 받은 정성도(46) 씨의 경우는 담보가 있어 가능한 경우였다. “은행에서 지상권을 해오라는데 땅주인은 절대 안해주죠. 제 땅 조금 있던거랑 아버지 땅까지 싹 담보로 잡아서 대출자금을 받았어요. 담보가 있으니까 했지, 결국 없는 사람은 시작도 하지 말라는거죠.”



행정·농협·농신보 서로 '다른 말'…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같은해 신규후계농에 선정된 이광휘(33) 씨는 행정이나 농협, 농신보가 요구하는 서류나 하는 얘기가 각각 달라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는 확인서 끊어주면서 3억 다 가능할거다, 하고. 막상 농협에 가면 농신보에서 대출가능한도를 정해줘야 대출해 줄 수 있다 하고, 농신보는 자기들은 서류 올라온 거 확인해서 내려줄 뿐 대출에 대해서는 권한이 없다고 하고, 준비한 서류만 해도 300장이 넘는데, 도무지 이 제도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대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자금 지원이 확정됐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올들어 파이프값이 두 배 가까이 뛰자 자재회사는 현금을 안주면 파이프를 못준다고 했다. 하지만 농협은 완공이 다 돼야 자금이 나온다고 했다. 공사가 중단됐다. 속이 탔다.

“다른 지역엔 30% 정도 선급금이 있더라고요. 원래 정부 시행지침엔 최대 70%까지 가능하게 돼 있고요. 근데 그동안 우리 지역은 한 번도 선급금을 지급한 적이 없다는거에요,” 근 한 달을 설득한 끝에 선급금 30%를 받아 겨우 숨통이 트였다. 진주에서 선대출을 받은 건 이광희 씨가 처음이라고 한다.



담보 없인 시설자금 대출 불가, 땅값만 올리는 후계농자금

B씨는 “농협에선 담보가 있으면 된다는데, 그럼 왜 이런 제도를 만들어놨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갖고 있는 돈이 없으니까 열심히 시간 들여 교육도 받고, 영농계획서도 쓰고, 자격요건 갖춰서 후계농 자금 신청한 거 아니냐고 따져 물으면 ‘우린 잘 몰라요. 위에 지침이 그래요’ 라는 말만 반복한다”고  전했다.

그는 “후계농자금을 쓰려면 결국 땅을 사는 수밖엔 없다. 농협에서도 웬만하면 시설 사지 말고 땅 사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땅값만 올려놓는다. 대체 땅 한평에 30만원, 40만원씩 하는데, 1000평 사면 3억이고, 여기에 시설 지으면 2억, 그럼 빚이 5억인데 1000평 농사로는 절대 이 돈을 갚을 수가 없다”며 정책당국이 현장의 실정을 알긴 아는거냐고 물었다.

정성도 씨도 “이건 20년, 30년 전 정책이다. 지금은 작게라도 시설물이 없으면 농사짓기가 어렵다. 땅 사는 것보다는 시설물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한다. 그런데, 담보 잡기 쉬우니까 땅을 사면 돈을 빌려주지만, 시설물 투자는 거의 돈을 쓸 수 없게 만들어놨다”고 지적했다.



김창연 한농연경남도연합회 정책연구소장
“한 달 내 직장 그만두라 하고, 자금 대출 막으면 어쩌란 건가”


“청년후계농으로 선발해 한 달 안에 직장 그만두라 해놓고 자금 대출을 이렇게 막아버리면 대체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얘기냐.”

김창연(57) 한농연경남도연합회 정책연구소장은 국회 앞이든, 청와대 앞이든 달려가 1인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에 청창농에 선발됐다 낭패를 당한 하병우 씨의 장인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사위가 이런 일을 당하고서야 이게 정말 심각한 문제라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젊고 유능한 인재를 선발해 안정적인 영농을 뒷받침하겠다고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결국 “정부도 책임 지지 않고, 농협이나 농신보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안하겠다는 뜻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10년 임대차계약이나, 30년 지상권 설정을 어떤 바보같은 토지주가 선뜻 해주겠나. 그 자체가 농촌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면서  “농신보라는 게 담보력이 부족한 농어업인을 위해 설립한 기금인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러려면 차라리 처음부터 부모한테 증여 받은 토지가 있는 사람들만 선발을 해야지, 다 해줄 것처럼 뽑아서 직장 그만두게 하고, 계약금 걸게 하고,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물었다. “뽑을 땐 우리 농업을 책임질 인재들이라고 뽑아놓고, 시작도 해보기전에 절망하게 하는 건, 처음부터 빚더미에 앉게 하는 건, 우리 모두 이 아이들에게 죄 짓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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