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법 개정’ 핵심요구 3선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LH 사태로 촉발된 ‘농지 투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농민·시민사회단체들의 개선 요구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참여연대가 8일 ‘부동산 투기 근절·투기이익 환수를 위한 5대 과제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5대 입법과제 중 농지법 개정 방안을 제안했다. 사진제공=참여연대LH 사태로 촉발된 ‘농지 투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농민·시민사회단체들의 개선 요구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참여연대가 8일 ‘부동산 투기 근절·투기이익 환수를 위한 5대 과제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5대 입법과제 중 농지법 개정 방안을 제안했다. 사진제공=참여연대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농지 투기’ 사태가 터지면서 당정이 대대적인 농지제도 개편에 착수했다. 정부의 제도 개선 방안은 여당의 입법 발의를 거친 상황으로, 조만간 국회 논의를 앞두고 있다. 다만, 4.7 재보궐선거가 정부 여당의 참패로 끝나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총사퇴,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당 재정비에 돌입함에 따라 모처럼 조성된 농지제도 개혁 움직임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농민·시민사회단체는 국회를 중심으로 관련 법 개정을 차질없이 추진하되, 근본적인 농지제도 개혁을 위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농지제도 개선 방안과 관련한 농민·시민사회단체의 요구사항을 정리했다.

“취득자격 심사 강화만으론 ‘가짜농민’ 색출 한계”

“광역단체장이 정부 협의 거쳐
지자체와 대대적 실태조사를”
“소유·이용·전용실태 모르면
어떤 개선책도 나올 수 없어”

1. 농지 이용 실태 전수조사 실시=정부 대책의 핵심 내용은 △농지 취득자격 심사 강화 △투기우려 농지에 대한 사전·사후 관리체계 정립 △농지 불법 행위 제재 강화 및 부당이득 환수제 도입 등이다. 신규 농지 취득(소유) 단계의 심사 기능을 강화해 농지 투기를 막겠다는 정책 방향이다.

하지만 농업계와 시민단체는 근본적으로 모든 농지의 소유·이용 현황을 현장조사를 통해 확인하는 농지 전수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농지 취득자격 심사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가짜농민’을 가리는 데 한계가 있고, 필지별 이용 실태 파악 없이는 농지에 대한 관리 감독 행정이 형식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금까지 농지의 소유와 이용 실태에 대한 정확한 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매년 농지 소유 이용 및 보전 등에 관한 실태조사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하고 있지만 상속·이농 등에 따른 농지 현황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농지 전수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 대책에는 이런 내용이 빠져있다”고 짚었다.

참여연대도 8일 ‘부동산 투기·투기이익 환수를 위한 5대 과제 발표’ 기자회견에서 “소규모 일부 지역 농지 샘플 실태조사로는 소기의 목적 달성이 불가하다”면서, “광역단체장이 정부와 협의를 거쳐 관할 지자체와 함께 대대적인 농지실태조사 실시에 나서면 농지 보존을 위한 근본 대책 수립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농지법 개정 방안을 제시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최근 경실련 주최 ‘농지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농지 전수조사는 경자유전 원칙을 담은 헌법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함에도 정책 수립 과정에서 거론조차 안 됐고, 단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다”며 “농지가 어떻게 소유·이용·전용되는지 그 실태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떤 개선책도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도 “정부가 농지원부를 농지대장으로 전면 개편하겠다고 하지만, ‘경영체 등록을 하지 않거나 임대차 계약조차 하지 않은 비농민 소유 농지’ 파악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라며 “농지 전수조사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기 주범 주말·체험농장 예외조항 폐지”

“비영농 농지취득자 농지 매각
임대차 강제할 법 장치 필요”
“농업법인 소유 제한 강화
비농업인 자경기간 의무화를”


2. 비농업인 농지 소유 예외 조항 개정=현행 농지법은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오면서 ‘누더기’ 농지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농업·시민단체들도 이런 예외 조항을 악용한 농지 투기가 만연해졌고 이번 LH사태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기회에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를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대폭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다.

참여연대는 “농지법상 농지 소유 예외 제도를 대폭 정리하고, 기존 비영농 농지취득자들에는 농지 매각 및 법률이 정하는 요건을 준수하는 임대차 쪽으로 방향을 틀게 만들도록 강제할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주말체험 농장이다. 기획부동산업자들이 농업회사법인을 통한 ‘쪼개기 농지 투기’의 통로로 전락함에 따라 해당 규정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취미생활이나 여가 활동 목적의 주말체험 영농일 경우 굳이 농지를 소유하지 않고 임차하더라도 충분하다. 농지 은행을 통한 농지 임대차 등을 활용하도록 해 비농업인의 농지 취득 자체를 막아야 한다”며 “현재 주말·체험 영농을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1000㎡ 미만 농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실태조사를 통해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을 경우 처분명령을 하는 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농업인 상속인의 농지 소유 요건도 문제다. 현재 1만㎡ 이하의 상속농지에 대해 농업경영에 이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으나 선언적 성격이 강하고, 1만㎡ 이상 농지를 한국농어촌공사 등에 맡기는 내용의 입법안이 정부 대책과 별도로 국회에 발의된 상황. 경실련도 같은 맥락의 의견이다.

이와 함께 농지 상속 시 신고를 의무화하고, 농지 취득 시 필요서류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비농업인이 우회적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연결고리가 된 농업회사법인의 농지 소유 제한도 강화해야 할 부분으로 거론된다. 비농업인의 자경기간 의무화, 농지 전용 제한 등의 방안도 추가 반영돼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농지 취득·이용·보전 전담할 상설기구 설치해야”

“농지위원회 ‘반쪽짜리’ 우려
농지 행정 전담할 기구 필요”
“농지 전용은 원칙적 불허하고
공익성 높을 때만 별도 심사를”


3. 농지 전담 상설기구 설치=정부는 대규모 전용 심사의 공정성·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농식품부 내 농지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전국 시·군·읍·면에 농지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방침이지만, 조직 위상과 과거 운영 전례를 감안할 때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농지 취득을 비롯해 농지 이용과 보전 등의 관리를 맡을 전담 상설기구(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경실련은 “농지관리위원회는 단순히 농지행정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현장에서 드러나는 농지행정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농지정책을 펼치기 위한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면서 “결코 농지관리위원회를 반쪽짜리 기구로 만들어서는 안되며, 업무별로 분리돼 운영되고 있는 농지정보도 통합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석두 GS&J 인스티튜트 연구위원도 “정부안처럼 위원 몇 명을 위촉해 필요할 때마다 부정기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으로는 실효성 있는 역할을 담보하기 어렵다”면서 “전담 인력이나 예산 등이 반영된 상설기구로 설치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무진 전농 정책위원장은 별도의 ‘농지관리청’을 신설해 농지 전용 심사는 물론 임대차 문제 등 농지 이용과 보전을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특히 전담 기구 설치는 공익직불제, 지역 농정 거버넌스인 농업회의소의 역할 부분과도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어서 관련 논의를 포괄적으로 가져갈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다.

농지 전용제도 개선 역시 별도 전담 기구를 통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참여연대는 “현행 농지 전용 제도를 전면 개선해 농지법에 농지 전용을 원칙적으로 불허하는 것으로 정하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기타 각종 개발 관련 법률에 따라 실시되는 공공사업의 경우에도 공익성이 매우 높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별도 독립기구(농지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농지 전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국회, 시민사회 의견 반영…법 개정 속도내야”

▲농업계 의견 반영한 제도 개선=농업·시민단체들은 국민적 공감대 속에 제도 개편 동력이 살아있는 만큼 근본적인 농지 제도 개편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도 관련 논의를 꾸준히 진행해 왔고, 이 내용을 중심으로 김정호 더불어민주당(경남 김해을) 의원이 농지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어서 각계 의견을 적극 반영한 개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참여연대는 “농민·시민단체, 학계와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의 그동안 정책 건의 및 요구사항들을 정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해 헌법상의 경자유전 원칙을 지키는 방향으로 농지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농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농지법 개정안을 마련한 경실련은 국회 입법 청원을 준비하고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9일 “조만간 농지법 개정안을 국회 입법 청원할 계획이며, 의원청원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면서 “각계에서 농지 제도 개선 논의가 활발한 만큼 관련 내용들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최대한 반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